[재물이야기] 군법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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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 원, 코드 원”

박 병장의 제대가 얼마 남지 않았던 6월 25일. 군의관과 혜화동에 있는 서울대학교병원에 갈 일이 있었다. 대위는 일을 마친 후 퇴근하고 나 혼자 구급차를 몰고 공군본부로 돌아가는데, 여의도로 가는 아현동 고가도로 밑이 꽉 막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저녁 먹을 시간에 맞춰 들어가려면 시간이 촉박했다. 

나는 반대편 신호등이 빨간색인 것을 확인한 후 사이렌을 켜고 중앙선을 넘어 앞을 향해 달렸다. 일반적으로 구급차가 사이렌을 켜고 역주행을 하면 반대편에서 오던 차들이 알아서 비켜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은 한 무리의 차량이 방향도 바꾸지 않고 오히려 헤드라이트를 켜며 나에게 비키라는 신호를 보냈다. 나는 군대 구급차에게 비키라고 하는 그 차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속력을 냈더니 그 차가 결국 방향을 바꿔서 내 옆을 쓱 지나갔다.

차량을 보니 당시 장관급들이 타고 다니던 ‘푸조’라는 차였다. 그 차를 따라서 수십 대의 검은 외제차들이 줄지어 지나갔다. 그날은 6.25기념일이었다. 아마도 국회의사당에서 나오는 차들인 듯했다. ‘국회의원들이 무슨 행사를 하고 올라오나 보다’라고 생각했지만 검은 외제차가 줄지어 가는 것을 보니 기분이 좀 찝찝했다.

아현동 고가도로 밑 질주를 무사히 마치고 나는 시간 내에 부대에 도착해 저녁을 먹었다. 그런데 갑자기 헌병대에서 전화가 왔다. 지금 당장 구급차를 끌고 정문 앞으로 나오라는 것이었다. 정문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눈앞에 펼쳐진 충격적인 광경에 입을 쩍 벌릴 수밖에 없었다.

수십 대의 경찰차와 경찰 오토바이, 무전을 치는 경찰관들이 보였다. 영화에서 범인을 포위할 때나 볼 수 있는 바로 그런 장면이었다. 내가 나타나자 수많은 경찰들이 나를 주시했고, 그중 한 사람이 내게 다가왔다. “어느 길로 오셨습니까?” 나는 혜화동에서부터 온 길을 쭉 설명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무전기를 뽑아 들고 무전을 주고받았다. “코드 원, 코드 원, 용의자 잡았습니다.” “환자의 탑승 여부, 그리고 환자의 상태 및 관등 성명을 보고하라, 오버.”

무전을 통해 들리는 목소리는 너무나도 위압적이었다. 나 혼자였는데, 환자라니 무슨 말이지? 용의자는 뭐고 코드 원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머릿속이 점점 복잡해졌다.

“그 차가 누구 차인지 몰랐습니까?” 그 사람이 내게 물었다. 아마도 고가도로 밑에서 보았던 검은 외제차를 말하는 것 같았다. “각하 차였습니다.” 세상에, 각하라니! 각하라면 대통령이 아닌가!

그 많은 검은 차 중 하나에 대통령이 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람이 무전기에 대고 말하던 ‘코드 원’은 대통령을 의미했다. 그런데 나는 뭣도 모르고 대통령을 향해 정면으로 돌진한 것이었다. 꼬투리 하나라도 잡히면 곧바로 ‘삼청교육대’로 보내지던 살벌했던 시기, 대통령의 말이 곧 법이었던 시절이었다. 아현동 고가도로 밑 광란의 질주는 갑자기 내 목숨이 걸린 문제가 되었다. 당시 대통령이 탄 차는 비공식 행사 때문에 일반 차량들 속에서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웬 구급차가 나타나 돌진해 왔다. 앞에서 달려오는 구급차를 비켜 세우려다 실패한 경호차가 바로 무전으로 연락해서 곳곳에 숨어 경비하던 경찰들에게 나를 체포하도록 명령을 내린 것이다.

이은태 목사

 뉴질랜드 선교센터 이사장

 Auckland International Church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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