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 행복한 선택  박래창 장로의  인생 이야기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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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교회의 갈등과 화합, 그리고 세대교체

‘서로 져서 같이 이기는’ 관계 만들기

교회와 성도 위한 갈등 해결의 길

이튿날 새벽, 닭 우는 소리에 잠이 깬 우리는 마당으로 하나 둘 모여들었다. 동트기 전 산자락에는 안개가 자욱했고, 선암사 길에는 천년의 고요가 가득했다. 선암사로 올라가는 길을 우리가 완전히 독점하고 산책을 하니 상쾌함이 온몸을 감싸고 가슴 속 깊이 촉촉해졌다.

여유롭게 두 시간 동안 선암사 경내를 둘러보고 돌아와 받은 아침 밥상은 꿀맛이었다. 스무 가지가 넘는 반찬을 서로 권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당회에서 비롯된 오랜 갈등으로 여행 오기 직전까지도 소원하고 서먹했던 관계가 완연히 달라지고 있었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했던 박경리 선생의 시가 자꾸만 되뇌어지는 여행길이었다.

나이 들어 제일 먼저 버릴 것은 미움이다. 미운 감정만 하나 둘 지워버리면 홀가분해진다. 행복한 여생이 된다. 이 은퇴장로회 여행이 7년여 동안 당회에서 갈등했던 우리들의 응어리진 묵은 감정을 털어내는 작은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물론 갈등의 극단에 있던 장로 몇 분은 참석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중간에 있는 장로들이라도 소통을 하다 보면 그 갈등에서 완전히 회복되는 날이 곧 오리라고 믿었다.

내가 이 행사를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서로 져서 같이 이기는’ 관계를 만들어가자는 것이었다. 잔뜩 세웠던 날을 내려놓고 서로 편안해질 수 있는 분위기가 되도록 기회를 만든 것이다. 대책이 없을 때는 밀고 나가는 것만이 아니라 물러서거나 중단하는 것도 방법이다. 뭐든 한 발짝만 물러서서 생각하면 그렇게 심각할 것도 없는 일들이다. 끊어졌던 관계가 이어지면 어떤 갈등도 종내는 풀리게 된다.

나들이를 마친 뒤 장로들은 전보다 한결 부드러워진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물론 큰 변화는 아니었다. 조금씩 어색한 기운이 나타나기도 했다. 그래도 이때를 시작으로 조금씩 해소가 된 덕분에 지금 소망교회는 한국 교회 역사에서 ‘초대형 교회의 목사 세대교체 후유증 극복 1호’라고도 불릴 수 있게 됐다. 그렇기 때문에 복되고 자랑스럽다. 이런 역사적인 자리,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기적의 자리에 내가 함께 했고, 작게나마 윤활유 역할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 말이다.

모두에게 유익이 되는 해결책

소망교회의 갈등이 심각하게 불거진 것은 2006년 10월부터다. 소망교회를 창립해서 26년 동안 초대형 교회로 성장시킨 곽선희 목사님이 은퇴하시고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던 김지철 목사님이 후임으로 부임하신 3년 후부터였다. 교회 일부에서 새로운 목회 리더십에 대한 불만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당회에서 의견 차이로 시작된 갈등이었지만, 곧 교인들에게 유인물을 돌리고 언론매체와 검찰, 법원, 노회, 총회에 고소‧고발하는 데까지 커져갔다. 맞고소나 고발은 피하고 끝까지 방어하는 선택을 했다. 엄청난 변호사의 비용이 큰 부담이 되긴 했지만 십시일반으로 감당했다. 서로 고발하고 고소하기 시작하면 본질은 없어지고 끝이 없는 쟁송만 남게 되기 때문에 맞대응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 결과 40여 건의 민‧형사상 고소‧고발 사건은 모두 무혐의 처리됐고, 교단 차원에서도 더 큰 분란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 험난한 과정을 지나는 동안 마음을 정한 것은 ‘교회와 성도들 모두에게 유익이 되는 해결책은 무엇인가?’였다. 우리의 할 일은 ‘반드시 이기는 것’이나 ‘반드시 무언가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하게 일하실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망교회에서 첫 번째 뽑힌 장로로 28년간 시무하는 동안 크고 작은 문제는 계속 있었다. 2006년 이전에도 심각한 분쟁이 한 차례 있었다. 그런 갈등을 어떻게 풀어보려고 동분서주하는 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었지만 동시에 값진 일이기도 했다. 시무장로로서 적절한 때에 적절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었다. 그것은 내 일평생을 돌아볼 때 가장 값지고 뿌듯한 일이다.

교회에서 장로가 불행해질 때는 담임목사와의 관계 설정이 잘못돼 있을 때다. 즉, 담임목사의 권력에 지나치게 아부하고 종속되거나, 지나치게 평가하고 비판하는 경우다. 장로는 늘 이런 갈등 관계로 접어들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장로는 목사가 큰 실수를 하기 전에 붙잡아주고, 부족한 면을 채워주고 도와주면서 기다려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 관계를 유지하려면 객관적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편견의 연약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소망교회에서 장로가 되어 22년을 곽선희 목사님과 함께했다. 곽 목사님은 내 신앙의 아버지셨고, 나는 그분 사역의 가장 가까이에 있었다. 곽 목사님은 수요예배와 새벽기도 시간을 통해 성경 신구약 전체, 사도신경, 주기도문과 예수님의 비유 말씀 강해를 이어가셨는데, 전체 강해 한 사이클이 꼭 7년 걸린다. 그 강해가 너무 좋아서 신앙생활 내내 수요예배와 새벽기도에 칼같이 출석했으며, 그렇게 22년에 걸쳐 성경 강해 세 번을 다 들었다. 중요한 출장 때문에 불가피하게 빠져야 할 경우에는 ‘소망의 말씀’을 사서 보충하며 따라갔다. 나는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즐거워서 공부하는 우등생이었다. 그 시간은 교회학교 교사를 40년 하는 동안 학생들과 부서 교사들에게 가르칠 내용을 공부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만큼 무척이나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지금도 곽 목사님은 내가 가장 존경하는 목사님이다.

그런 나였지만 세대교체가 이뤄진 뒤에는 김지철 목사님이 흔들리지 않도록 지키는 쪽에 섰다. 언젠가 어느 장로가 이런 얘기를 전했다.

“박 장로는 곽 목사님 때는 그때대로 중요한 자리 다 해먹고, 지금은 김 목사님에게 붙어서 좋은 자리 다 해먹는다.”

박래창 장로

<소망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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