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으면 보이는 얼굴, 잠이 들면은 꿈속의 사람…’
좋아하는 가요의 첫 구절입니다. 잠자리에 들어 눈을 감을 때 가장 많이 떠오르는 얼굴은 어머니입니다. 돌아가신지 오랜 어머니와 아버지의 빛바랜 흑백 사진 두 장을 각각 작은 액자에 넣어 책장 선반에 올려놓았기에 내가 책상에 앉으면 두 분이 뒤에서 나를 내려다보십니다. 아버지는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돌아가셨기에 전혀 기억이 없고 따라서 꿈속에서도 만나 뵌 적이 아마 없었던 듯하고 반면에 20여 년 전에 떠나신 어머니는 종종 여러가지 모습으로 찾아오셔서 꿈이 깨고 나면 새삼스러운 그리움에 젖곤 합니다.
노래 가사 속에서 눈을 감고 떠올리는 얼굴은 사랑하다가 헤어진 연인의 얼굴일 터인데 이상스럽게도 한참 열렬히 연애하는 동안에는 꿈속에 사랑하는 이가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밤이 지나고 날이 밝으면 곧바로 찾아가서 서로 만날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꿈에 보이는 얼굴은 실제로는 함께 할 수 없어 그리움이 쌓인 사람이니, 먼저 세상을 떠났거나 인생의 어려움으로 인해 사랑하지만 이별해야 했던 그 사람을 꿈속에 만나보게 되는가 봅니다.
중년이 다되어 교회에 나가게 되면서 한동안 꿈속에서라도 예수님을 볼 수 있으면 하는 꿈을 꾸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껏 꿈속이건 생시건 그리스도를 직접 대하는 신비한 체험을 해보지 못한 것은 나의 신앙생활에 별로 자랑스럽지 못한 부분입니다. 아직도 몇 해가 남아있으니 기다려 볼 일이고 육체의 시간이 끝나고 영의 세계에 들게 되면 예수님을 만나는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입니다.
내게 어머니는 예수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무한한 사랑의 존재입니다. 그분을 정점으로 해 말하자면 사랑의 울타리가 나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가족과 주로 학창을 통해 얻은 친구들 그리고 교회생활을 하며 가꾼 아름다운 인간관계는 정이라는 인자(因子)만으로 그 밀도가 측정될 수 있는 세계입니다. 한편, 성장하면서 사회생활을 통해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 또다른 인맥이 형성되고 선택의 여지없이 내가 속하게 된 국가사회의 조직을 통해서도 많은 인간들이 나의 삶을 간섭합니다. 예컨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비롯해 국가권력을 행사하는 여러 단위의 사람들이 수시로 나의 감정안으로 드나들며 증오를 유발하기도 하고 드물게는 지지와 옹호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오늘날 나라의 정치가 뒤죽박죽이 되어 현직 대통령이 구치소에 50일이 넘게 수감되기도 하고 고위 공직자 탄핵이 국회의 일상업무처럼 되고 남녀노소 시민들은 편이 갈려 도심의 대로를 점거하고 함성의 대결을 벌입니다. 이런 와중에 우리의 마음은 용서와 회개 같은 사랑의 정서로부터 멀어지고 있습니다. 눈을 감으면 수백가지 유튜브 영상이 심어 놓은 사납고 모진 얼굴들이 그들의 원망스러운 이름들과 함께 떠오르니 야단입니다. 봄이 왔으나 거리의 정치구호 플래카드들이 가로수의 연두색 새잎들을 가리고 나부낍니다.
마음을 가다듬어 이런 불순한 것들을 쫓아내야겠습니다. 우크라이나와 중동의 가자지구 같은 포연과 총성만 없을 뿐, 마치 전쟁 속을 살고 있는 듯, 살벌한 이미지들이 우리의 뇌리를 가득 채우니 이젠 미소 띤 어머니 얼굴마저 뵙기가 어려워지는 듯합니다.
김명식 장로
• 소망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