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한국교회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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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역사는 세계 선교사에 유례가 없는 급성장을 기록한 사례였다. 한국교회 급성장의 배경으로 몇 가지가 논의된다. 첫째, 초기 한국 교회가 가진 민족주의적 성격이다. 한국은 아프리카나 대부분 아시아 나라와 달리 서구 기독교 제국의 식민지가 아니고 비기독교 제국인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을미사변 후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을 수립하자 민족주의와 기독교 신앙의 결합이 손쉽게 일어났다. 갑신정변 발발 후 고종황제 내외는 선교사 알렌에게 건강은 물론 대외 정세에 대한 자문을 받았다. 외세의 침략이 강해지자 기독교는 민족과 함께 저항하기 시작했다.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에는 언더우드, 아펜젤러 등 개신교 선교사와 서재필, 윤치호 등 개신교 지도자, 배재학당 학생 등이 참여해 독립사상을 주창했다. 이들은 황실의 권위를 높이고 민족의 자긍심을 기독교 신앙으로 고양했다. 이런 민족주의적 성향은 일반 대중의 열띤 호응을 얻었다. 교회에서는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 독립에 대한 정보를 빨리 얻을 수 있었다. 둘째, 교회는 교육과 의료 기관 뿐 아니라 기독교 문명을 통해 근대의식을 함양했다. 교회에서 대의제를 도입해 제직을 선거로 선출했다. 이전에 없던 일이다. 여성들에게도 교육의 기회가 활짝 주어졌다. 과거부터 전해 온 반상의 차이도 철폐했다. 백정 박성춘은 선교사 에비슨의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기독교인이 되고 후에 만민공동회의 연사로 활약했다. 

그의 아들 박서양은 세브란스의 첫 졸업생으로 의사가 되었다. 백정 가족이 이런 사회적 신분 상승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기독교가 가져온 새로운 근대의식 때문에 가능했다. 셋째, 네비우스 정책을 도입한 선교 정책 때문이었다. 자급, 자전, 자치라는 3자 원칙 때문에 재정, 전도, 그리고 교회 운영에서 교인의 참여가 급속히 증가되었다. 교회가 세운 많은 기관들 즉 병원이나 학교도 한국 교인의 지도력으로 운영되었다. 선교사들은 보조적인 위치였다. 우리 교인들은 헌금하고, 전도하고, 그리고 운영했다. 이렇게 교인에게 민주적 참여를 보장함으로 교회는 우리나라가 급속히 근대화되고 발전하는 저력이 되었다. 필자는 한국 교회의 급성장의 또 하나 원인으로 당시 미국의 외교정책을 꼽는다. 당시 조선 왕실은 비록 포교를 허락하지 않았지만, 선교사 알렌의 요청대로 광혜원 설립을 허락했다. 고종황제는 미국이 외세 특히 일본을 견제해주길 간절히 원했다. 그러나 고종황제의 기대는 곧 실망으로 변했다. 미국은 철저히 일본 편을 드는 외교정책을 펼쳤다. 당시 대통령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조선은 미개하여 스스로를 통치할 자격이 없으니 일본의 지배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그는 재임 중인 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통해서 한반도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것을 도왔다. 그 결과 일본제국은 순조롭게 조선을 강제 합방할 수 있었다. 미국은 필리핀을 식민지화 했다. 한반도 최대금광인 운산 금강의 채굴권과 철도 부설권까지 차지했다. 일본의 순조로운 한반도 식민지화 뒤에는 이런 미국의 일방적 대외정책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식민정책에 수탈당하던 백성들은 교회에서 위로를 얻고 독립에 대한 꿈을 키웠다. 사실 동아시아에 진출한 미국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조선을 개항시켰다. 그러나 20년 후 변화된 요구와 논리를 따라 조선에서 철수했다. 

그 후 미국은 한국 상황에 무관심 일변도를 유지했다. 조선 왕실의 거듭된 요청을 철저히 무시했다. 다만 일본의 진주만 공습 이후 태도가 변했다. 2차 세계 대전 후 한반도에서 일본은 철수했으나 남북은 비극적으로 분단되고 말았다. 그 후 6·25 한국 전쟁과 베트남 참전, 이라크 전쟁 등에서 한국과 미국은 피를 함께 흘린 혈맹이 되었다. 그러나 미국은 기본적으로 남한을 러시아, 중국을 견제하는 지정적 이익을 가진 국가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트럼프는 주한 주둔비 인상, 관세 인상 정책으로 이런 경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우리 국민들은 한편에서는 미군 철수를 또 다른 한편에서는 성조기를 들고 미국을 환영하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최근 이런 정교일치 현상이 교회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정통 기독교인인지 의심스러운 전광훈 광화문 집회에 많은 교인들이 동원되는 것은 아쉽다. 앞으로 한국교회는 최근 정교일치의 방향을 수정하지 않는다면 점점 더 쇠퇴할 것이다.

구춘서 목사

<한일장신대 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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