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갈등, 분열, 양극화, 이런 속에서 이래도 저래도 만족하지 못한 상황 속에 있을 때 우리는 ‘딜레마’(dilemma)라는 말을 쓴다. 이것은 궁지에 있으며, 진퇴양난(進退兩難)의 입장이라는 것이다.
딜레마는 둘(di)이라는 뜻과 주제, 주장(lemma)이라는 이중의 뜻을 가지며 바울도 “내가 둘 사이에 끼였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지금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이 딜레마에 빠져 둘 사이에 끼여 찢기거나, 파괴되거나, 무너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는 입장이다. 과연 이 둘 사이에서 복음을 가진 교회, 크리스천이 무엇을 할 수 있겠으며, 한다 한들 설득력이 있겠는가? 교회가 사회참여, 정치참여 등 많은 것을 논리적으로, 전문적으로 이야기 할 수 있겠으나 가장 원론적이고 본질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예수님처럼” 해야 하겠다.
그러면, 예수님처럼 이라고 할 때 그 구체성이 무엇일까? 너무 광범위하고 막연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교과서적인 답이라고 생각할 것이나 몇 가지를 제언하고자 한다.
첫째, 순수한 인격성이다. 좌·우, 이념, 옳고, 그름의 문제에 앞서 어떤 인격성을 갖추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정말 크리스천과 그 중에 지도자들이 산상수훈적 인격성을 갖고 있는가? 어거스틴이 “비도덕적인 사람은 크리스천이 아니다.”라고 했는데, 크리스천도 되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 날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이 된다.
둘째, 비폭력이다. 우리는 예수님도 성전 청결을 위해 채찍을 휘두르셨음을 본보기로 어떤 폭력에 대해 정당성을 가지려는 이가 있는데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철저한 비폭력, 순교적 비폭력이어야 한다.
셋째, 십자가이다. 이는 너무나도 철저한 자기 비움, 자기 낮춤, 자기 비하, 자기 부정이다. 이것이 없이는 어떤 것도 정당화될 수 없다.
지금 제언한 것은 아주 무력하고 아무 역할도 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될 수 있으나, 세상에 대한 교회의 역할은 이런 ‘존재’로서 ‘존재’해야만 한다. 이 존재 자체가 역할이 되는 것이다. 소금은 소금으로 맛을 내고 녹아지는 것, 빛은 비추는 것, 그것이 곧 역할이다.
지금 이 어려운 때 약한 것 같고 움직이지 않는 것 같으나, 이 땅 곳곳에서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으로 존재하고 그것만으로도 큰 역할이 되는 것이다. 지금 이런 본질적 본분을 망각하거나 자기도취적 행동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 것으로 착각하는데, 근본적 각성과 회개가 필요하다.
또한, 우리 사회의 갈등이 영적 위기에서 비롯되었음을 인식하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중보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기도와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평화의 중재자로서 사회가 극단적인 분열과 갈등 속에 있더라도 국민 통합과 사회적 화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희망을 제시해야 한다. 혼란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다스리고 계심을 믿으며, 절망이 아니라 소망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화평을 이루며, 기도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이 땅을 새롭게 하실 것이다.
이 땅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겸손히 무릎 꿇고, 광장이 아닌 골방에서, 큰 소리가 아닌 마음을 찢는 근본적 신앙인의 모습을 갖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