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에세이] 생활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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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 위임 목사님의 가장 중요한 목표 중의 하나가 사람들을 생활신앙인으로 인도해 나가는 것이다. 그런 설교를 많이 듣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다짐을 하고 예배당 문을 나서지만 생활 속에 묻혀가면 그 말씀은 생각도 안나고 일상대로 아웅다웅하며 힘겹게 살아가기 일쑤다. 

평소에 비교적 양보하며 사는 편이어서 별로 마찰을 잘 빚지 않고 지내지만 그래도 옳거니 그르거니 하면서 시시비비 가릴 때는 생활신앙인의 범주에서는 한창 멀리 와있는 사람임에 틀림이 없는 편이다.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 옆의 찻집으로 자리를 옮겨 담소하며 차를 마시는 중에 뒤늦게 한잔을 더 가져오던 여종업원이 잔을 잘못 건드려 탁자 위에 차가 쏟아졌다. 내 반대편에서 일은 벌어졌는데 탁자가 내 앞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던 모양이다. 고스란히 내 바지 위로 흘러내렸는데 다행히도 과히 뜨겁지 않아 바지와 내복만 적시고 화상 같은 큰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순간 그 여종업원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쩔쩔매고 있는 게 아닌가. 앳된 얼굴 위로 손녀의 얼굴이 겹쳐 지나간다. 그 아이가 요즘 알바 하러 다닌다는데 지금 저 아이처럼 실수하는 건 아닐까 하는데 생각이 미치자 콧날이 시큰해졌다.

절대빈곤에서 나선 일은 아니지만 어찌됐건 가슴이 아렸다. 걱정하지 말라, 괜찮다. 아무렇지도 않다고 위로하고 있는데 윗사람인 듯한 젊은 남자가 뛰어오더니 미안하다. 다친 데는 없느냐, 옷이 많이 젖었으면 조치하겠다 등등의 말을 하면서 수습하려 했다. 나는 아무렇지 않으니 저 여종업원 너무 야단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가 웃으면서 정말 괜찮으냐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얘기해 달라면서 미안해서 치즈케이크를 대접하겠단다. 내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니까 친구들이 왜 그러느냐며 가져오라 한다. 중간에서 너무 사양하면 친구들이 민망해질 것 같아 그냥 두었다. 세탁소에 맡기면서 감사했다.

나중에 살펴보니 하얀 운동화가 커피로 얼룩져 있다. 바지와 내복은 집에서 빨면 된다. 뜨거워서 화상을 입었어도 그토록 양보하며 대했을까? 나도 잘 모르겠다. 아마 변상을 요구하지는 않았을 테지만 아까처럼 행동하기는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손녀 덕에 생활신앙인에 가까운 하루를 보냈으니 감사할 일이다. 

오경자 권사

 신일교회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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