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생 담배를 피우지 않고 살아왔다. 건강도 건강이려니와 어려서부터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것이 결과적으로 담배를 피우지 않게 된 이유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장로가 왜 갑자기 담배이야기를 꺼내는가?”하고 의아해 하시겠지만 사실은 담뱃갑에 적혀있는 ‘영문 선전문구’ 하나를 소개하려고 하는 것이다. 미국산 담배 중에 《버지니아 슬림(Virginia Slims)》이라는 담배가 있다. 지금은 남성용 담배로 인기가 있는 모양인데 원래 이 담배는 여성용 담배로 출시(出市)가 된 것이라고 한다.
1980년대 초, 내가 미국에서 처음 본 「버지니아 슬림」이라는 담뱃갑 표지에는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얼굴화장을 하고 바람에 한들한들거리는 가벼운 반투명 천으로 된 원피스를 입고 머리에는 ‘보닛(여성용 모자)’까지 쓴 여성이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서 가늘고 긴 「버지니아 슬림」 담배 한 개를 검지와 장지 손가락 사이에 끼고서 담배 연기를 내뿜는 사진인데 그 여성의 가늘고 길게 생긴 손가락도 예쁘거니와 손톱에 칠한 연분홍색 매니큐어도 여인의 멋을 한 층 더 아름답게 해주고 있었다. 그 담뱃갑의 표지에는 멋있는 ‘필기체’로 쓴 영문 문구가 적혀 있었는데 그 내용이 바로 “You’ve come a long way, baby!”이다. 이 말의 뜻을 직역하면, “아가씨, 먼 길을 오셨습니다.”의 뜻이 된다.
미국은 건국초기에 여성에게는 참정권(參政權)이 부여되지 않았고 또 여성의 흡연을 법으로 금했었다고 한다. 그 당시의 상황을 묘사하는 재미있는 만화가 있었는데 한 여성이 담배를 여성용 모자 속에 감추고 태연하게 길을 걸어가는데 갑자기 불어 닥친 회오리바람에 모자가 날아가면서 담배가 땅에 쏟아지게 되고 그 여자는 쩔쩔매면서 몹시 당황해하고 있는 만화가 바로 그것이다.
그 후, 여성의 참정권이 법으로 보장이 되고 여성의 흡연도 허락이 되자 ‘때는 바로 이때다’ 하고 여성 흡연애호가들을 겨냥해 만든 담배가 바로 이 《버지니아 슬림》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아가씨, 먼 길을 오셨습니다.” 라는 문구는 단순히 ‘먼 길을 오느라고 수고했다’는 의례적인 인사가 아니라, “여성의 지위가 격상된 것을 축하합니다.”라는 인사가 되는 셈이다.
한국의 각종 편의점에는 ‘담배 판매코너’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집 앞에 있는 「GS-25」편의점을 방문해 남성용 「버지니아 슬림」 한 갑을 구입했다. 이 글을 쓰는데 참고 자료로 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런데 그 담뱃갑 표지는 40여 년 전, 미국에서 보았던 그것과는 사뭇 격이 떨어져 실망이 매우 컸다. 옛날의 그 예쁘고 낭만적인 디자인과 문구는 온데 간데없고 매우 혐오스런 사진과 문구가 담뱃갑을 뒤덮고 있었기 때문이다.
흡연(吸煙)으로 인해서 치아(齒牙)가 추한 모습으로 착색(着色)되어 흉측한 모습을 드러내는 잇몸 사진과 담배 연기에는 발암물질인 나프탈아민, 니켈, 벤젠, 비닐 크롤라이드, 비소, 카드뮴 등이 들어 있어 ‘후두암(喉頭癌)’의 원인이 된다는 경고문과 함께 후두암 수술현장의 사진이 실려 있다. 이런 섬뜩한 사진을 보니 20여 년 전, 문 장로와 동갑내기로 폐암 때문에 생을 마감한 이른바 코미디언의 황제로 불리던 ‘李ㅈㅇ’씨가 병석에 누워서 “담배는 독약입니다.”하던 TV광고 장면이 떠오른다.
기분 좋게 내뿜는 담배연기 속에는 무려 4천 종 이상의 화합물과 43가지에 이르는 발암물질이 들어있다고 한다. 담배의 성분 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타르’인데 ‘타르’는 200여 가지가 넘는 화학물질의 복합물로서, 폐암은 물론이고, 식도암, 구강암, 방광암, 췌장암, 위암, 자궁경부암 등을 일으키는 물질이 포함되어 있으며 하루에 한 갑씩 담배를 피우는 사람의 폐에는 1년이면 종이컵 한잔 분량의 ‘타르’가 축적된다고 했다.
다음은 어느 의과대학 학생의 「해부학시간 실험보고서」의 일부를 발췌한 내용이다. “연분홍색의 탄력 있는 ‘비흡연자’의 폐(肺)에 비하여 연탄가루가 가득 차 있는 듯한 모습의 무겁고 축축한 ‘흡연자’의 폐에 대한 충격적인 장면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