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강단] 비워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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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3:7-9)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식사를 마친 그릇을 그대로 두거나, 커피를 마신 컵도 그대로 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마찬가지로 인간의 마음이라는 그릇도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채운 채로 살아간다면 어떻게 될까?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의 고백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와 교훈은 무엇인가 함께 은혜 나누길 원합니다. 

첫째, 흠이 없는 바울

(빌 3:5-6) “(5) 나는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나 흠 없는 사람은 없다. 모든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이다. 그래서 실수와 죄를 반복하며 산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자신 있게 고백한다. 나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왜 바울은 이런 고백을 했는가? 할례는 난지 8일 만에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표식으로 행하는 의식이다. 베냐민 지파는 열두 지파 중에 요셉의 아우로 가장 작은 지파이며,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은 어디를 가든 히브리어만 말하는 골똘한 히브리인임을 말한다. 

바리새인은 유대의 가장 유력한 정통파로서 인생의 단 하나의 목적이요 의무인 율법의 모든 세목을 지키기 위해 일상생활 및 사업 전반에서 자기들을 분리시킨 자들이다. 또 율법으로 흠이 없는 자란 율법이 요구하는 것을 모두 수행하는 완전한 자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말씀의 은혜가 충만해져 복음의 확신을 가진 자가 되었다. 그러므로 율법으로도 흠이 없던 자가 이제는 말씀과 믿음으로도 흠이 없이 거듭난 종이 된 것이다. 즉 비워야 사는 삶은 오직 말씀으로 거듭난 삶이어야 한다.

둘째, 그리스도를 얻는 바울

(빌 3:8-9)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가 가진 지식이 고상하다고 자랑한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자신 있게 고백한다. 예수를 믿기 전 율법주의에 따라 바리새인이었던 그는 가말리엘 문하생으로 차기 최고 율법자로 인정받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해로 여겼다고 고백했다.

왜 바울은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고 했는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다 해로 여긴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나타난 변화이며, 신앙은 가치판단을 바꿔준다. 그것이 거듭난 증거이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는 것은 그가 전에 가지고 있던 유익한 것들이 다 해로 여겨질 정도로 가장 좋은 지식임을 증명하는 것이며,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다는 것은 율법으로 살려고 몸부림친 자기 자신에게 욕구불만과 무익한 노력으로 율법에 염증을 느낀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는 고백은 바울의 가장 행복한 고백이다. 즉 비워야 사는 삶은 오직 예수가 최고라고 믿는 것이다.

셋째, 상을 위해 달려가는 바울

(빌 3:13-14)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사람은 누구나 위대한 꿈과 목표를 가지고 있다. 성공하는 자는 그 목표를 향해 초지일관하는 사람이다. 상을 받는 사람은 항상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 그리스도를 믿고 난 후 사도 바울은 자신 있게 고백한다.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해 좇아가노라고.

왜 바울은 위에서 부르신 부름을 상을 위해 좇아가노라고 했는가? 목표가 분명한 사람은 현재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되고, 과거를 잊어버리고, 전진에 몰두하는 것이 중요하다. 푯대를 향해 좇아간다는 것은 ‘달리는 자는 관중들이 무슨 짓을 하든지 그들을 돌아봐서는 안 되며, 오직 푯대만을 바라보며 달려야 한다’는 의미다. 부름의 상은 곧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면류관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세상이 주는 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상을 위해 달려가는 삶이 가장 행복하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즉 비워야 사는 삶은 오직 천국의 상을 받기 위해 경주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끝없이 나를 비우고 살아야 한다. 나를 비워야 성령님이 내주하시고, 은혜와 복과 평강이 채워진다. 사순절 네 번째 주간에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물과 피를 다 비우신 것을 기억하자.

오직 말씀으로 거듭난 삶, 오직 예수가 최고라고 믿는 삶, 오직 천국의 상을 위해 경주하는 삶으로 가득 채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길 축원합니다.

박순희 목사

<미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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