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온 지 140여 년이 흘렀다. 선교 초기에는 예배당에 좌석이 남녀가 구분이 되고 서로 얼굴을 마주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서울의 어느 교회는 양반들이 일반 평민과 같은 장소에서 예배를 드릴 수 없다며 따로 독립해서 예배당을 새로 지었다는 역사가 전해진다. 초대 교회는 성 차별과 신분 차별을 폐지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 현대 교회에도 과제는 있다. 어느 시대인들 과제가 없겠는가!
어느 날 30대 여성 성도가 목회자실을 찾아왔다. 남편의 폭력을 견딜 수 없어 이혼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 여성은 마음의 부담과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찾아온 것이다. 목회자가 대답했다. “성도님, 이혼은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죄가 됩니다.” 교회 안에 점점 소문이 퍼져 나갔다. 이 여성은 주변의 보이지 않는 차가운 눈빛과 소외감을 이겨낼 수가 없어 교회를 그만 포기했다.
그 누가 이혼은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것임을 모르겠는가? 교회와 목회자가, 고통을 겪고 있는 성도들에게 율법적 판단보다는 정서적 공감을 해 주며 보듬어줄 수는 없을까? 비난, 비판하기보다 아픔에 위로와 공감해 주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 소중하지 않겠는가?
교회와 목회자는 정의(Justice)를 외치기보다 자비(Mercy)를 먼저 앞세우는 것이 옳을 것이다. 성령의 세 가지 은사는 예언과 영적인 지식과 믿음이다. 교회 지도자가 앞의 세 가지 은사를 두루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결코 아무 것도 아니다. 세상살이에 지치고 상처받은 마음으로 교회를 찾아온 사람을 부모 같은 마음으로 안아 주어야 한다. 돌봐주고 보살펴 주어야 한다.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사랑을 베풀 수 있어야 한다. 교회는 영혼을 구원하고 상처난 마음을 치유해 주어야 한다.
통계에 의하면 우리 국민 중 15% 내외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한다. 자살율은 OECD국가 중 1위이다. 2023년 자살로 삶을 마감한 사람이 1만 3천770명이다, 2024년 하루 평균 자살자가 40여 명이었다는 통계다. 청년 인구(19~39세) 중 5.4%가 은둔성 외톨이라고 한다. 약 40~54만 명이다. 노인 중에는 매년 고독사(孤獨死)로 사망하는 사람이 3천400여 명이다.
교회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사회의 그늘이 많다. 서로 돕고 치유하는 공동체로의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상처받은 사람이 교회에 도움을 받고 싶어 나오면 먼저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져 주어야 한다, 비난,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 넉넉한 사랑으로 포용해 주어야 한다. 목회자는 겉으로 드러난 것만 살피지 말고 그들의 내면에 감추어진 감정과 정서도 살필 수 있어야 한다. 필자가 들은 일이다. 어느 안수집사가 교회에서 큰 상처를 받고 교회를 쉬고 있다. 일 년이 지나도록 심방(尋訪)은 고사하고 목회자도 어느 누구도 전화 한번 없었다. 교회에 나오고 싶으면 나오고 떠나고 싶으면 나가라는 식이다. 설교 때는 또 사랑을 강조하며 예수의 도(道)를 설교한다. 가면적(假面的)이고 위선적(僞善的)으로 보이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다. 목회자는 단순한 삯을 받는 직업이 아니고 신령하고 거룩한 소명자(召命者)가 아니겠는가! 지식과 권위, 자존심으로만 목회하는 것은 심히 우려스러운 일이다. 하나님의 종으로서 참으로 부끄러운 모습이다.
어떤 이유로 고통을 가진 성도가 있으면 먼저 지극한 사랑으로 배려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세리와 죄인들, 천대 받던 여인들, 심신(心身)이 온전치 못한 병자들이 주님께로 모여 들었다. 주님께서는 이들을 안아주시고 사랑했다. 교회는 누구에게나 희망과 위로가 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이들에게서 예수님의 모습, 예수님의 얼굴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며 영적인 눈을 열고 마음에 진실한 사랑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김용관 장로
<광주신안교회·한국장로문인협회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