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부산 선교역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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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복음 전해지는 역사, 선교사들의 입국 전 이미 시작

부산진교회

부산은 선교사들이 조선에 입국하는 과정에서 제물포보다 먼저 발을 디뎠던 곳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입국 시점을 제물포로 하는 것에 대한 부산 지역의 입장도 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1884년 9월 알렌 선교사의 입국으로부터 국내에 시작된 실제적인 선교의 역사는 서울로부터 시작되었고, 부산은 시간이 조금 늦다는 것이다. 물론 한반도에 복음이 전해지는 역사가 선교사들의 입국 이전에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은 한국교회사에서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일이다.
현재 부산은 대한민국 제2의 도시가 되었다. 인구와 경제력에 있어서도 그렇다고 할 수 있을 만큼 큰 도시이다. 이곳 부산에도 복음이 전해지는 과정이 있었고, 현재 그 역사를 잇고 있는 교회들과 선교사들의 발자취가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중심으로 찾아본다면 좋은 여정이 될 것이다.
지금은 부산에 가기 위한 교통수단은 다양하다. 그러나 철도가 중심이었을 때 부산역과 부산진역은 종착역과 직전 역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각각의 교회가 있다. 역에서 내리면 언덕 위에 가장 잘 보이는 것이 예배당이었는데 하나는 초량교회이고, 또 하나는 부산진교회다. 이 교회들은 같은 해에 시작된 부산 최초의 교회들이라는 점에서 역사와 장소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19세기말 인천을 통해서 입국한 선교사들은 서울에서 언어와 풍습과 조선에 대한 이해와 선교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한 후 부산으로 가야 했다. 그 중에 제일 먼저 부산을 찾은 사람은 1890년 호주장로교회의 데이비스(Joseph Henry Davies) 남매였다. 그는 1889년 10월에 입국해 서울에서 5개월 동안 언어연수를 한 다음 부산으로 가는 도중에 천연두와 폐렴에 걸려서 고통 중에 1890년 4월 4일 도착했다. 하지만 도착한 다음날 데이비스는 별세했다. 부산 선교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서울에서 부산에 도착했지만, 그는 실제로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한 채 부산 선교를 위한 희생제물이 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그의 희생에 관한 소식이 본국 호주장로교회에 전달이 되었고, 호주장로교회는 데이비스의 비전을 자신들의 것으로 확인하고, 이듬해인 1891년 10월 맥케이(James H. Mackay)를 비롯한 5명의 선교사를 부산에 파송해 부산진(좌천동)에 선교부를 설치했다. 이것이 부산에 본격적인 선교의 시작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캐나다의 게일(James Scarth Gale)이 평신도 선교사로서 1888년 12월에 입국해서 이듬해인 1889년 황해도와 해주를 비롯해서 전국을 순회하다가 그해 8월 부산에 거처를 마련하고 1년 남짓 부산에 있었다. 또한 그보다 앞선 성공회교회의 월프(John R. Wolfe) 선교사가 1885년 중국인 전도자 2명과 함께 잠시 방문한 적이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부산에 처음으로 정주한 선교사는 게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후에 한국과 한국 교회를 위한 많은 일을 한 인물이 되었다.

부산진일신여학교

한편 미국 북장로교회는 호주장로교회보다 늦은 1891년 9월 베어드(William M. Baird)를 부산에 보내어 초량(영주동)에 선교부를 설치하고 부산 선교를 시작했다. 따라서 부산 선교는 짧은 시차는 있지만, 사실상 거의 비슷한 시점에 호주장로교회와 미국 북장로교회 선교부가 설치되었고, 본격적으로 복음 전도를 시작했다. 그리고 두 선교부는 1993년 1월에 열린 ‘장로교선교부연합공의회’에서 부산과 경남 지역 선교를 연합해 실시하기로 합의함으로써 두 선교부에 의한 부산 선교가 더욱 적극적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다음 두 선교부는 선교지 분할과 관련해서 의견을 다시 나누게 되었고, 경남의 남부와 서부(기장, 언양, 양산, 거제, 진채, 고성)는 호주장로교회가, 경남의 동부와 서부(김해, 웅천, 밀양, 영산, 창녕, 칠원, 창원)는 미국 북장로교회가 맡기로 협의했다. 또한 인구가 집중되어 있는 부산, 동래, 마산은 두 선교부가 공동으로 실시하는 것으로 조정을 했다. 이러한 협의가 있기 이전에 진주는 호주장로교회가 1905년에 거점을 확보했고, 호주장로교회 지역인 밀양에 북장로 교회가 거점을 만들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선교지 분할에 대한 재조정이 필요하게 되었다. 북장로교회 선교부의 경우는 서울과 평양을 중심으로 북한 지역에 주력하고 있었고, 중부지방(경기도 일부와 충북)까지 감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부산과 경남지역까지 감당하는 것에 대해서 많은 부담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1909년 두 선교부는 협의를 통해서 북장로교회가 맡았던 경남 동부와 마산 지역을 호주장로교회에 넘겨주었다. 그리고 1913년 북장로교회 선교부 연례회의에서 부산과 경남에서 완전히 철수하는 것으로 결정함으로써 이때부터 부산과 경남은 모두 호주장로교회의 선교 구역이 되었다.

맥켄지기념관

실제로 부산에 호주장로교회와 북장로교회가 본격적으로 선교를 시작한 것은 1891년이다. 즉 북장로교회는 1891년 9월, 호주장로교회는 10월에 부산에 거점을 각각 마련하고 선교를 시작했으니 출발이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가지고 있는 부산지역의 복음 전래와 초기 교회가 세워지는 것은 각각의 교회가 나름의 역사를 가지고 성장했다. 초기에 설립된 교회들 가운데 부산진교회는 호주 선교사들이 1892년에 매입한 좌천동 686번지 일대의 부지에서 시작되었다. 이곳에 선교부를 설치하고 지은 선교사들의 주택에서 예배를 드린 것이 부산진교회의 시작이다. 호주장로교회 선교사들은 1891년 10월 12일에 도착해 예배를 드리면서 주민들을 초청했고, 1892년 12월 16일 한옥을 매입해서 예배당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부산진교회는 1894년 4월 22일 심상현과 여자 신자인 이도념, 김귀주 등이 최초로 북장로교회 선교사인 베어드 목사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들은 부산 지역의 최초 세례교인이다. 여기서 특이한 것은 분명히 호주 선교사들이 시작한 공동체인데, 북장로교회 선교사인 베어드가 세례를 했다는 것이다.
또한 제1대 담임 목사인 엥겔(George O. Engel, 왕길지) 선교사에 의해서 1904년 심취명을 장로로 장립시켜서 부산진교회는 경상도 최초의 조직교회가 되었다. 교회가 성장하면서 시작 당시에 마련한 한옥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어렵게 됨으로써 새로운 예배당이 필요하게 되었다. 현재의 예배당은 1985년 800평 규모로 붉은 벽돌로 지은 것인데 이것은 여섯번째 예배당이다. 그 후 예배당 앞에 2007년 왕길지 기념관을 지었는데, 이것은 예배당과 함께 부산진교회의 상징적인 건물이다.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교회인 만큼교회 주변에는 이 교회만 가지고 있는 역사를 찾아볼 수 있다. 교회 윗 마당에는 1931년에 교회 창립 40주년을 기념해 세운 기념비가 있다. 설립자 멘지스(Miss Belle Menzies)와 무어(Miss Elizabeth S.Moore)의 공덕을 기념하는 비석이다. 두사람은 여성의 몸으로 부산 선교의 선봉에 선 사람들로 부산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매우 특별한 이들로 기억되고 있다.

데이비스, 맨지스와 무어 공덕비

먼저 멘지스는 호주장로교회가 1891년에 파송한 사람으로 부산진교회와 일신여학교를 설립한 당사자이다. 초기부터 1924년까지 30여 년 동안 부산 지역의 전도와 교육 사업을 위해서 많은 공헌을 했다. 따라서 호주장로교회의 후배 선교사들에게 ‘호주 선교부의 어머니’ 즉 ‘대모(代母)’라는 말을 듣기까지 했다. 무어 선교사는 1892년부터 1912년까지 부산에서사역을 했다. 그 후 통영으로 옮겨 그곳에서 5년 동안 사역을 했다.
또 하나의 기념비를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부산과 경남 선교에 깃발을 들었던 호주장로교회 첫 번째 선교사인 데이비스의 희생을 기념하는 것으로 교회 정문 오른 쪽에 ‘데이비스 기념비’가 2001년에 세워졌다. 데이비스는 부산 지역을 선교하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누이와 함께 찾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부산에 도착한 다음날 별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호주장로교회가 조선을 선교지로 결정했고, 그들의 기도와 뜻을 모아서 선교사들을 파송함으로써 특별히 경남지역 복음화의 기수가 되었다. 따라서 데이비스의 희생은 특별한 것이기 때문에 이 비석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부산진교회는 호주선교부와 같은 공간에 있기 때문에 선교부가 했던 일들을 공유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1905년에 설립한 일신여학교 건물이 바로 교회 앞에 남아있다. 건평 285평 2층 건물인데 붉은 벽돌로 지었다. 초기 선교부들이 공통적으로 시행했던 학교 교육이 이곳 부산에서도 호주장로교회 선교부에 의해 주도되었다. 현재 이 건물은 부산시 기념물 제55호로 지정이 되어서 관리되고 있으며, 2006년부터는 일신여학교 학생들이 초기에 교육을 받던 자료들과 부산지역 3.1독립만세운동의 진원지로 기억되도록 기념관으로 만들어서 공개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전시 공간에는 호주장로교회 선교사들의 활동상이 담겨 있다.

이종전 박사

• 인천기독교역사문화연구원 원장
• 대신총회신학연구원 원장

 

 

 

 

※사진출처 : 부산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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