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여정] ‘성경고등학교’ 진학을 부모님께 허락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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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장래 희망과 미래관은 어쩌면 알게 모르게 고등학교 시절에 정해진다고들 말한다. 나 또한 국민학교를 졸업한 후 서당에 나가면서 일면 독학 수업으로 일차 목표인 검정고시에 합격한 여유 때문인지 매일이다시피 교회와 서당을 오가며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깊어지는 신앙심을 느끼고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 존재의 이유가 있고 살아가는 명분이 있으며 그 안에 삶의 가치관이 자리잡고 있다고 믿기에 이르렀고, 우리 인간의 긍정적인 목표가 성경말씀 안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굳게 믿은 나는 꾸준히 성경공부도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 나를 알게 모르게 유심히 보아온 전도사님은 어느날 일요 예배가 끝난 후 전도사님실로 나를 조용히 부르셨다.

차 한 잔을 마주하고 독대한 전도사님은 일상적인 여러 이야기 끝에 앞으로의 진로문제를 친자식이라도 대하듯 진지하게 물으시는 게 아닌가. 내가 엉겁결에 아버님, 어머님과 의논할 상황이라고 말씀드리자 자신의 생각 하나도 참조하라며 그동안 나를 꾸준히 지켜보았다고, 장래 목사가 되는 과정을 공부해 보는 것이 어떠냐며 나의 의견을 경청하려는 듯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말씀인즉, 나의 온후한 성품과 겸손한 자세를 칭찬하시며 보다 많은 사람들께 기독 교리를 전하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세상사는 면모와 삶의 근원이 있고 그리고 고통 받고 좌절하는 불행한 많은 사람들의 치유의 근본도 성경 안에서 찾아야 한다며, 이 세상에서 더욱 많은 사람들의 정신을 구원하는 것이 참인간의 표본인데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너같은 인성을 가져야만 한다고 진부하게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딴에는 칭찬받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나를 확장하며 기대 이상으로 좋게만 보는 것 같아 참으로 쑥스럽고 몸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마침 오후가 지나고 반쯤 노을을 가진 해가 기울고 있었고 차양이 깃들고 있는 전도사님의 방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그림자가 그렇게도 거룩하게 보일 수가 없었다. 온 세상을 짐진 듯한 그 모습이 내 마음 안의 파문으로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순간 마음 속에 십자가를 긋고 혼자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는 말씀을 간곡히 드리고는 차후 뵙겠다는 인사말씀을 남기고 전도사님의 방을 나왔다.

그리고는 이후 한 달여간의 고심 끝에 내 자신의 성공이나 안위보다 남을 위해 헌신하고 불쌍한 약자들을 도우며 봉사하고 헌신하는 자세로 이 세상을 방황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기독 교리를 전유하며 성경의 말씀 안에 용기와 희망을 갖게 하고 더불어 함께 하리라는 생각에 도달하게 이른 것이다.

전도사님이 말한 이 기회를 꼭 잡으리라고 굳게 맹세하니 감격에 겨운 내 몸 자체에서 한없는 감사의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것이 아닌가. 어떤 마음의 진솔한 깨달음도 이렇게 오는 것이 아닌가하고 어린 나이에도 자문자답해 보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후부터는 세상 자체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순리대로 오는 아침과 저녁, 그리고 각자 생활하며 나누는 일상, 자연에서 형성된 숲과 나무들, 물이끼 하나에도 그 어떤 존재감으로 내게 그 해답을 얻고자 하는 듯했다. 모두가 범상하지 않은 신비로움과 그 자체였다. 전도사님은 그 이후 일절 내게 아무 말씀 않으셨지만 말없이 나를 지켜보고 계심이 분명해 보였다.

가끔 교회에서 인사를 하면 내 대답을 기다리시는 듯했다. 이제 아버님, 어머님의 해답을 얻는 일만 남았다.

마침 어느 휴일날 일가친척을 방문하시고 일찍 돌아오신 부모님께 나의 상급학교 진학문제와 진로문제를 상의했다. 간곡한 어조로 그간의 사정을 얘기하고 목사의 길을 가겠다는 진심 어린 말씀과 더불어 목사가 되는 관문인 보은에 있는 성경고등학교로 진학하겠다는 말씀을 드렸다.

미래를 결정하는 문제라 가슴은 두 방망이질로 요동쳤으며 숨은 한참이나 가빠왔다. 그리고 얼굴은 한껏 상기되어 고개 숙여 부모님의 하명을 기다렸다.

한참을 두 분이 마주하고 일면 나를 주시하더니 아버님께서는 대견하다는 듯이 한없이 포근한 말씀으로 “네가 그리 마음 정했다면 너 희망대로 하거라. 다만 최선을 다해야 결과를 얻는 것이니 도중에 너의 생각이 변하거나 진로를 수정하더라도 심사숙고해서 결정해야 할 것이야.” “사람은 가벼워서도 안 되지만 너무 무거워도 기회를 실기하는 것이야. 이 말은 분명히 명심하거라” 하시며 순순히 허락하시는 게 아닌가. 나는 너무나 감격해서 한동안 마음이 얼어붙었 다.

아버님의 말씀인즉 나의 뜻과 희망을 최대한 존중한다는 승낙의 의미와 부연해서 언제든 그것이 너의 길이 아니면 네 스스로 알아서 처신하라는 당부 말씀이었다.

즉 모든 것은 이제 네 스스로 선택하고 알아서 하라는 자식에 대한 한없는 믿음과 신뢰가 함께 하신 말씀이었다.

참으로 심금을 울리는 이 말씀으로 나는 더욱 부모님에 대한 존경심으로 가득했으며 미래에 대한 자신감과, 이제 이 세상을 헤쳐나가는 그 어떤 어려움도 나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으로 극복하겠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해졌다.

당시만 하더라도 한학에 대한 깊은 조예와 소학과 유교문화에도 일가견을 갖고 계신 신구문화를 앞서 보고 계시던 아버님의 용단은 말할 필요가 없겠다. 부모님께 인사하고 밖에 나오니 벌써 어둑해진 밤하늘의 서녘엔 샛별이 이만큼 다가오고 있었다.

밤이면 제일 먼저 돋는 이 금성은 오늘을 기리며 내일의 희망을 지키라는 의미도 함께 담고 있어 이 날따라 내게 하나의 크나큰 축복의 의미로 온 밤하늘을 찬연히 밝히고 있었다.

양한석 장로

• 문현중앙교회

• 시인 

•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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