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이슈] 한국교회 순교자들 (4) 김익두  목사 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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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교회서 예배 중 총격 사건으로 순교

한국교회 ‘순교자’ 개념 논의 활성화 해야

5개 조는 주일에는 예배 외의 여하한 행사에도 불참한다는 것, 정치와 종교의 엄격한 구분, 교회당은 예배 외의 목적에 사용할 수 없다는 것, 현직 교역자가 정계에 종사할 때는 교적을 사면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교회는 신앙과 집회의 자유를 확보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김익두 목사는 강양욱의 ‘조선기독교도 연맹’ 총회장직을 맡았다. 그러므로 공산주의에 협조했고, 정치 활동한 경력을 가졌다는 것이었다. 방북단이 평양에 갔을 때 신천사건(信川事件)에 관련된 김익두 목사의 사진이 ‘미제의 이중간첩’이었다는 것이었다. 신천박물관에는 그의 사진이 수십 년 동안 걸려 있었다.

그는 1950년 10월 14일 신천(信川)교회에서 새벽기도회를 인도하던 중 후퇴하는 인민군이 난사하는 총에 맞아 순교했다. 이때 이를 말리던 신도 5명도 함께 순교했다. 김익두 목사의 생애는 76세로 마쳤다. 그의 유해는 교회 정원에 가매장되었다가 그해 11월 29일 신천군 제직회 주최로 신천 지역 50개 교회가 모여 서부교회에서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고신대 이상규 교수는 “한국교회 순교자 수를 1만 명 정도까지 산정하고 있는 것은 자료의 결핍에서 오는 추정이나 불분명한 추정은 순교자에 대한 개념 정립의 부재에도 그 원인이 있다”라고 하면서, “한국교회는 그동안 자연재해나 사고사 등 인간적 실수로 인한 희생자나 사고자들에 대해서 단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순교자’로 칭하는 일이 있었다”라고 했다. “일례로 단지 전도여행 중 사망한 사람도 순교자로 칭한 일이 있었다”면서, “순교자 칭호의 바른 수여를 위해서는 ‘순교’의 개념이나 용례에 대한 신학적 이해와 교회사적 용례에 대한 정리 작업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이전에도 다수의 논자가 ‘순교자’로 지칭하고 있는 토마스 목사를 순교자로 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일도 있고, 해상사고로 사망한 아펜젤러, 교통사고로 사망한 말스버리 선교사를 순교자로 볼 수 있는가 등에 대한 논의가 일기도 했다.

순교자에 대한 개념 논란은 이미 교회사에 나타나 있다. ‘순교’에 대한 개념 정리와 관련한 논란은 한국교회만의 일은 아니다. 초대교회 때는 순교에 대한 지나친 열망이 신앙적 자살, 곧 자발적 순교로 이어지기까지 해서, ‘누가 순교자이며, 순교자라는 칭호를 얻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가?’ 하는 순교자 개념 정리가 절실히 요구되었다.

이에 대해 이상규 교수는, 초기 교회가 이해했던 순교자의 조건은 “순교는 육체적 생명이 끊어지고 참으로 죽어야 하며”, “그 죽음은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증거하는 진리에 대한 박해에 기인한 것이어야 하며”, “그 죽음을 자의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세 가지였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교수는 “한국교회에서는 순교와 관련해 전통적 입장의 순교개념이 지지를 받고 있다”라고 하면서, “따라서 한국교회는 ‘순교자’ 개념에 공동의 의견을 수렴해 확정하는 논의를 활성화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내가 순교자가 되고 싶다고 되는가? 그렇지 않다. 순교는 때가 있다. 내가 지금 광화문 네거리에 나가서 “나는 순교자가 되고 싶다”라고 외치면 순교자가 될 수 있는가? 지나가는 사람들이 정신 감정을 받으라고 권고할 것이다. 

리처드 김(김은국)의 작품 《순교자》 속에 나오는 순교자들이 있다. 그들이 과연 순교자인가 하는 의문을 던진다. 순교자는 끝까지 자신의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확신 속에서 죽어야 했다. 이런 면에서 김익두 목사는 진정한 순교자였다.

이승하 목사<해방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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