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창에 가더라도 주일 성수만은”
중위는 운전병을 달라고 사정하고 백사는 안 된다며 다퉜다. 그때 중위가 감독관실 구석에 앉아 있는 나를 보고 다짜고짜 물었다. “너, 운전병이냐?” “네, 그렇습니다.” “크리스천이야?” “네, 크리스천입니다.” “이야, 네가 바로 하나님이 보내 주신 운전병이다!”
그러자 듣고 있던 백사가 한마디 했다. “걔 지금 영창 가려고 대기 중인데 데려가긴 어딜 데려가?” “영창이고 뭐고 난 지금 얘를 데려가야겠소.” 분명히 말도 안 되는 소리인데 거기에 대꾸하는 백사의 대답이 더 놀라웠다. “데려가고 싶으면 데려가든지.”
당장 영창에 가야 할 내가 공군에서 가장 가기 어려운, 유일한 학군단인 항공대학으로 가게 되다니. 어떻게 이런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더 놀라운 것은, 그날이 7월 1일이라는 것이었다. 박 병장이 제대한 바로 다음 날이었다. 내가 항공대학으로 가려고 짐을 챙기러 내무반에 돌아갔을 때, 두 일병은 눈에 불을 켠 채 이를 갈고 있었다.
박 병장도 제대했겠다, 공군 전체를 다 뒤집은 사고까지 쳤으니 가만 두지 않겠다고 단단히 별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학군단 단장이 타고 다니는 최고급 승용차인 포니2를 타고 등장해 내무반에 들어가 더플백만 챙겨서 나와 버렸다.
감사하게도 내가 모시게 된 학군단 단장님은 교회 집사님이었다. 하나님은 조그만 믿음을 지킨 내게 어마어마한 선물들을 허락해 주셨다. 사병이 부대 생활을 하지 않고 집에서 출퇴근한다는 건 꿈같은 이야기다. 그런데 하나님은 내가 주일을 지킬 수 있도록 제대할 때까지 집에서 출퇴근하게 해주셨다. 당시 군대에서는 기름을 절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덕분에 나는 경기도 수색에 있는 항공대학에서 단장님 댁인 반포까지 운전한 후 차는 거기 세워 놓고 집에서 출퇴근할 수 있었다.
학군단 단장의 운전병으로 일하면서 매일 아침 나는 너무나 황홀한 순간을 맞았다. 차를 몰고 항공대학 학군단에 들어서면 입구부터 군인들이 도열해 있다가 경례를 시작했다. 단장님은 내 뒤에 앉아 있으니 내가 그 경례를 가장 먼저 받는 셈이었다. 얼마나 황홀한 일인가! 차에서 내리면 방위병들이 차려 주는 아침밥을 먹고, 하루 종일 영어 공부를 하며 지냈다.
사실 나는 영어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좋았다. 그래서 어두컴컴한 무기고 한쪽에 있는 책상에 앉아서 신나게 공부했다. 그 모습을 본 단장님은 행정 담당 장교에게 장교들이 근무하는 사무실에 내 책상을 만들어 주라고 지시해 주셨다. 일개 사병이 장교들 틈에서 공부를 하다니! 심지어 장교들은 그 추운 겨울에 군사훈련을 시킨다고 난로에 손 한번 쬔 다음 밖으로 나가야 했는데, 나는 하루 종일 난로 옆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이 모두가 주일 성수를 향한 내 마음, 그 작은 것을 기쁘게 보신 하나님의 큰 은혜였다. 하나님은 내가 군기 교육대에서 일주일간 기도했던 것을 신실하게 이루어 주셨다.
이은태 목사
뉴질랜드 선교센터 이사장
Auckland International Church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