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된 믿음] 인천의 자유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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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25전쟁 당시 1950년 9월 15일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수복 당시 가장 먼저 상륙을 단행한 전투사적지이다. 이 자유공원은 초기에는 만국공원으로 호칭되다가 일제 시 서공원으로 변경되어 불렀다.

인천상륙작전으로 수복 당시 가장 먼저 상륙을 단행한 전적지임을 기념해 1957. 9. 15. 맥아더 장군 동상을 세우면서 자유공원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그래서 인천 자유공원 하면 6·25전쟁 당시 작전을 지휘하는 모습으로 인천 앞바다를 멀리 내다보는 형상으로 세워진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세워졌다. 맥아더 장군의 결단력이 아니면 인천 상륙이 불가했고(미 정부에서 트루먼 대통령 등 각료가 반대, 위험지역) 낙동강까지 전세가 후퇴한 상황에서 전세를 뒤엎기는 매우 힘든 상태였다고 한다.

좀 더 말하자면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명언이 있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Old soldiers never die! They just fade away)”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꾸게 한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동상 앞 노병은 죽지 않는다. 그는 한미연합군의 지휘관으로 활동 필리핀 식민지의 통치자였다.

당시 미국 트루먼 대통령이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1880~1964)에게 전쟁에 무력사용을 승인한 것은 대한민국이 약화됨을 염려해서였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7.14 맥아더 장군에게 국군의 작전지휘권을 이양하게 되었으며 맥아더 장군은 작전지휘권을 미 제8군으로 넘겼다. 그리고 불과 3일 만에 서울이 함락되고 7월 하순에는 낙동강까지 후퇴되어 전쟁은 판도가 뒤바뀌며 대작전이 시작되었다. 1950. 9. 15 작명 크로마이트 작전(인천상륙작전)으로 팔미도 등대의 불빛을 신호로 월미도 폭격작전이 시작되었다. 맥아더 장군의 지휘로 인천상륙작전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최대의 작전이라는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비교될 만큼 엄청난 물량이 쏟아진 상륙작전이었다고 한다. 미국 수뇌부 반대를 무릅쓰고 인천상륙작전은 대성공이었다.

인천 앞바다 군함에서 엄청난 포격으로 희생자도 많이 발생했으며 이와 같은 인천상륙작전과 전적지였던 이곳을 오늘날 인천 자유공원으로 아름답고 웅장한 모습이 아닌가 한다. 공원의 아름다운 꽃들과 그날의 희생정신, 그리고 전사자들 영령 위에 명복을 빌면서 시를 작성해 보았다.

인천 자유공원

가을 하늘 뭉게구름 청명한 날씨여라

6.25전쟁 기적의 작전지여

이 시간도 작전 지휘 모습인 양 맥아더 장군 동상이

푸르게 출렁이는 인천의 앞바다만 바라본다

기독교수필문학회는 하나 되어 자유공원 문학기행 왔어라!

그때 그 시절의 혼신을 다하신 전혼들이시여

어느덧 70년의 성상이 흘렀어라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던가 우리들 마음 졸여 생각하기 싫다마는 고개 숙여 자유공원 깊이깊이 그려본다

오늘날 대한민국 국제적 강대국들 주시하여 

한반도의 분단 아픔 왜 그리 요원한 것인가

우리 한번 하나 되어 머리 숙여 당겨보세

한 걸음 한 걸음씩 전적지 자유공원 함께 누비면서

주님 앞에 무릎 꿇고 승리하며 나갑시다.

최석산 장로

흑석성결교회, 수필가,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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