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강단] 예수의 마음을 품어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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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다섯 번째 주일을 맞이하는 삶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하시길 축원합니다.

가수 조항조가 이런 노래를 불렀다. “이 나이 먹도록 사람을 잘 모르나 보다 사람은 보여도 마음은 보이지 않아”라고. 사람들의 마음이 보이지 않아 너무 복잡하다. 그래서 아무에게나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갈수록 더욱 강퍅한 마음으로 살아가기에 너무 힘들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 지도자들의 마음도 돌같이 굳어 있었다.

예수의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fronevw(프로네오) 생각하다, 판단하다, 전념하다, 계획하다는 뜻으로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만 생각하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판단하고, 하나님의 일에만 전념하고, 하나님의 일만 계획하는 마음이다. 그 마음으로 예수님은 공생애 사역을 이렇게 완수하셨다.

첫째, 겸손한 마음으로.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하나는 겸손한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교만한 사람이다. 잠언서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겸손한 자는 존귀의 앞잡이고, 교만한 자는 멸망의 선봉이라고. 세상이 늘 요란하고 분쟁과 분열이 멈추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겸손한 마음보다 교만한 마음을 품은 자가 많기 때문이다. 서로 높아지고, 서로 많이 가지기 위한 싸움의 연속이다.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않고 오셨다. 왜 성자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않고 이 땅에 내려오셨는가?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인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죄 없는 인간이 화목제물이 되어야 하는데 인간 가운데는 없다. 그래서 예수님을 보내주셨다. 그분이 하늘의 영광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의 화목제물이 되어주심으로 인류에게 구원의 문을 열어 주셨다. 어느 공동체나 조직이든지 분열하지 않기 위해서는 모든 구성원이 한마음을 품어야 한다. 한마음을 품는 것은 같은 생각과 같은 뜻을 가진 것을 의미한다. 빌립보 교회와 한국교회가 분쟁과 분열을 해결할 수 있는 비결은 같은 사랑으로 뜻을 합해 다툼이나 허영을 버리고 예수님의 겸손한 마음을 품어야 한다.(요 13:34)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사는 것은 하루속히 죄와 교만함으로 가득한 나의 마음을 포기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무장하는 것이다.

둘째, 종의 마음으로. 인간은 탐욕의 존재라고 말한다. 그래서 좀처럼 자신을 비우지 않는다. 가정이나 직장, 교회나 사회 전반에 걸쳐 갈등과 분쟁이 일어나는 가장 큰 원인은 자신을 비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욕심과 탐욕을 비우지 못해 죄악에 빠져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이 현대사회의 특징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를 비우고 종의 형체를 가지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고 사도 바울은 가르쳐 준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진 사람들과 같이 되었다는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기를 비운다는 것은 통 속에 있는 물건을 아무것도 없이 완전히 쏟아내는 것을 말한다. 예수님은 사람이 되기 위해 하나님의 조용함과 평안과 영광을 자진해 기쁨으로 버렸다는 것이다. 인간의 모양을 갖추기 위해 신성을 버리신 것이다. 더 나아가 종의 형체를 가지셨다. 종은 노예의 형체를 말한다. 노예는 완전히 주인의 소유물이며, 완전한 복종의 삶을 사는 자이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시는 그리스도 예수는 요란하고 화려한 왕이나 전쟁에 승리한 개선장군의 모습으로 오시지 않았다. 베들레헴 작은 마을 여관 모퉁이 마구간으로 조용히 오셨다. 반겨 맞아 주는 이도 없고 여관마다 방이 없다며 냉정하게 돌려보냈을 뿐이다. 종은 섬김을 위해 사는 사람이다. (막 10:45). 즉 예수의 마음을 품고 사는 것은 오직 헌신의 신앙으로 종이 되어 섬기는 삶 그 자체다.

셋째, 죽기까지 복종하는 마음으로. 사람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무엇일까? 열정적으로 서로 사랑하고, 겸손히 섬기며 사는 모습이다. 개인과 가정, 교회와 국가가 잘 되는 비결은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이 많을 때 가능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대인들은 내가 너를 위해 희생하겠다가 아니라 네가 나를 위해 희생하기를 바라며 살기에 힘든 것이다. 군인이 지휘관에게, 죄인들이 예수님께 복종하면 좋은 일이 일어난다. 예수님도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왜 예수님은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는가? 예수님은 자진해 자신을 비웠고 참사람이 되기 위해 신성도 비웠다. 낮추셨다는 것은 자기의 모든 생각과 주장을 포기했다는 것이며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화목제물의 조건을 갖춘 것이다. 죽기까지 복종하셨다는 것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자신을 완전히 희생의 제물로 내놓으신 것을 의미한다. 사랑의 완성은 철저한 자기희생이며, 구원의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가 화목제물이 되시는 것이다. 주님의 제자로 산다는 것은 순교를 각오한다는 것이다.(눅 9:23). 즉 예수의 마음을 품고 사는 것은 오직 순교의 신앙으로 하나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것이다.

 주님 가신 길 십자가의 길을 생각하는 사순절에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모든 것을 비웠다면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채워야 한다. 예수의 마음을 품고 살면 하나님 나라가 보인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최후의 기도를 드리는 예수님의 목소리를 들어보았는가?(마 26:42). 예수님의 겸손과 종의 마음, 순종의 마음을 품고 살아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드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박순희 목사

<미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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