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을 다루는 의사와 학자들은 정상과 이상을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한다. 이는 때와 장소와 문화적 환경에 따라서 정상과 이상의 혼돈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인간의 행동에 대해 정상과 이상을 판단하는 시각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우선 동기의 문제이다. 가령 손을 씻는 현상은 청결이라는 동기에서 볼 때는 정상적 행동이다. 그러나 씻지 않아도 될 손을 계속 씻는 것은 이상한 행동이 된다. 치과의사는 환자를 돌보고 손을 씻는 행위를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반복한다. 이는 정상이다. 그러나 가만히 집에 있는 사람이 시도 때도 없이 손을 씻으면 이는 정상이 아니다.
둘째로 상황의 문제이다. 어떤 상황에서 발생했는가가 정상과 이상을 구분한다. 해변가에서 수영을 하려고 수영복을 입는 것은 정상이다. 그러나 같은 옷이라도 종로 네거리에서 수영복을 입고 다니면 정신병자 취급을 받는다.
셋째로 시각의 문제이다. 누가 판단하느냐에 따라서 정상과 이상은 구분된다. 가령 방언이라는 현상을 목사가 볼 때는 정상적인 성령의 은사로 본다. 그러나 믿지 않는 정신과 의사가 볼 때는 이상한 현상이 된다.
넷째로 이해관계의 문제이다. 뇌물을 받고 공금횡령을 해서 감옥에 가는 사람들은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다. 그러나 그의 가족에게는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저지른 일로 이해되어지는 것이다.
다섯째로 문화의 문제이다. 요즘 젊은 여성들이 배꼽을 드러내고 허리 살을 보란 듯이 내보이는 현상은 나이 드신 어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진보적 성향의 시각으로 보면 대수로운 일도 아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불신자들의 눈에는 극히 비정상적인 일이다. 주일 하루 쉬는 날을 온 종일 교회에 바치고 그것도 모자라서 십일조를 비롯한 각종 헌금도 바치고 노력 봉사에 각종 회의에 새벽기도 등등 신자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예수 믿는 자들은 그들만의 보화가 있다. 세상이 알지 못하는 기쁨과 감사의 조건이 있기에 주님을 향한 헌신에 제한이 없다. 예수 믿지 않는 자들이 불쌍해 보여야 비로소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십자가를 통한 주님의 사랑에 감전되어, 의무는 기쁨으로 변하고, 수고는 감사로 물드는 교회 생활이라면, 세상의 어떤 것도 그리스도인의 가슴 속 행복을 가로막을 수 없다.
문성모 목사
<전 서울장신대 총장•한국찬송가개발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