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마지막 유월절은 지키려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왔다. AD. 30년 4월이었다. 이때를 가리켜 종려주일이라 한다(마21:1-11, 막11:1-11, 눅19:29-44, 요12:12-39). 어린 나귀를 타고 입성하는 예수님에게 군중들은 종려 나뭇가지를 꺾어 흔들면서 예수님을 향해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하면서 환호를 보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입성하는데 왕으로서 위엄의 상징인 말을 타지 않고 어린 새끼 나귀를 탔다(슥9:9). 그것의 의미는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구약 이사야가 예언한 ‘종의 모습’이었다. 메시아 예언이 성취되고 있는 장면이었다. 찰스 콜슨(Charles Colson)은 그의 저서 <그리스도인, 이제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예수님을 태우고 가는 나귀가 한순간 착각해서 군중들이 자기를 환영하는 줄 알고 벌떡 일어나면 어떻게 됐을까?”라고 묵상한 바 있다. 오늘 우리들은 예수님을 태우고 가는 나귀가 돼야 한다. 그런데 환영을 받고 영광을 누려야 할 분은 예수님인데 그것이 내게로 오는 줄 알고 착각하거나 내가 받아야 할 영광이라고 오해해서 벌떡 일어나면 예수님은 나귀 등에서 떨어지고 망신만 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잘 나간다고 인정받는 소위 일부 대형 교회에서는 담임 목사가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님처럼 처신하는 모습을 볼 수 없다. 따라서 목회자들이나 교회를 섬기고 운영하는 장로나 권사, 집사들이 깊이 묵상하며 자기점검을 해야 되는 장면이다. 예수님이 받아야 하는 영광과 환영과 대우를 내가 가로채서(새치기해서) 누리려고 애쓰고 있지는 않는가? 그래서 강대상 앞에 서 있는 목회자(설교자)들은 자기 앞에 앉아 있는 교인들만 바라보지 말고 뒤돌아서서 교회당 앞면에 설치돼 있는 십자가 앞에서 무릎 꿇고 앉거나 겸손히 서보는 경험을 갖는 것이 좋다. 교인들에 대해 우월감을 갖고 있는 목회자는 없어야겠다. 신학을 공부했다고 해서 성경 지식을 좀 더 많이 갖고 있다 해서 모든 면에서 교인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그러니까 교회에서 ‘예수 알아가기’만을 강조해 자기의 신학 지식 자랑만 하다 보니까 정작 자신과 교인들 모두가 ‘예수 닮아가기’에는 무관심해지고 마는 것이다. 교인들의 생활 영역은 가정과 직장과 사회이다. 이렇게 다양한 교인들의 생활을 교회 안에서 목회자의 눈으로 확인하며 평가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교인들도 하나님의 현존(Coram Deo) 앞에서 인정받아야지 담임 목사 눈에만 들려고 힘써서야 되겠는가. 예수님의 지상 생활 마지막 장면들은 이러하다. ①예수님의 체포(마26:47-56, 막14:43-52, 눅22:47-53, 요18:1-11) ②전임 대제사장 안나스에 의한 예비 조사(요18:12-13, 19-24) ③현재 대제사장 가야바 앞에 서다(눅22:54-65) ④산헤드린에서의 정식 재판(마26:57-27:1, 막14:53-15:1, 눅22:66-71) ⑤벌라도에 의한 재판(마27:2, 11-14, 막15:1-5, 눅23:1-5, 요18:28-40) ⑥헤롯왕에 의한 재판(눅23:6-12) ⑦빌라도에게로 데리고 가서 사형을 요구하다(마27:15-26, 막15:6-15, 눅23:13-25, 요18:33-19:16) ⑧로마 군인들에게 채찍을 맞고 조롱당하다(마27:27-31, 막15:16-20) ⑨십자가를 움직일 수 없어 구레네 시몬이 대신 지게 되다(마27:32, 막15:21, 눅23:26) ⑩두 강도 사이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다(마27:33-56, 막15:22-41, 눅23:32-49, 요19:17-37) 예수님을 친 당시 로마 군인들의 채찍은 보통 2-3개의 가죽끈으로 되어 있고 그 끝에는 쇠붙이나 뼛조각들이 붙어 있어 고통을 극대화하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주님 그 십자가에 달릴 때/주님 그 나무에 달릴 때/해가 그 밝은 빛을 잃을 때/주님 그 무덤 속에 뉘일 때/주님 그 무덤에서 나올 때/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때로 그 일로 나는 떨려, 떨려, 떨려/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때로 그 일로 주께 영광, 영광, 영광/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찬송147장)
김형태 박사
<더드림교회•한남대 14-15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