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극심한 여론의 분열을 경험한 지난 100여 일간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온갖 분노, 증오, 두려움이 여과 없이 분출되는 시간이었다.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찬성과 반대로 수많은 국민이 연일 거리에 나와 극단적인 분노의 말을 쏟아내며 시위를 벌이는 일이 일상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헌재의 평결이 내려진 지금, 이 오랜 상처가 치유되는 시간이 시작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일제의 침략으로 시작된 우리나라의 근대사는 아픔과 상처로 점철되어 왔다. 일제강점기에 나라 잃은 설움을 겪었으며, 해방 이후에는 곧이어 세계적인 냉전에 휘말리면서 동족 간의 전쟁이라는 비극을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공산주의의 악몽이 국민의 가슴속에 깊이 상처로 남았다. 이와 함께 제주 4.3사건에서와 같이 빨치산 조직의 진압 과정에서, 그리고 이후 이어진 독재 정부의 탄압으로 수많은 국민이 억울하게 희생되면서 정부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 증오가 국민의 마음속 깊이 자리잡게 되었던 것이다.
1987년 민주화의 성공과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기적과 같은 경제발전을 통해서 우리나라가 이제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선진국의 꿈을 이루었음에도, 여전히 국민의 마음속에 쌓인 상처는 아물기는커녕, 광우병 사태, 세월호와 천안함 침몰 등의 사건이 있을 때마다 그 상처는 곪아 터지고 새로운 갈등과 증오와 정치적 대립은 커지기만 한 것이다. 한편의 사람들에게는 시장경제란 강자가 마음대로 약자를 지배하고 착취하는 괴물로 보였다면, 또 다른 편의 사람들에게는 중국과 북한의 공산주의가 곧 우리나라를 지배할 것이라는 두려움으로 과거에 겪었던 공산주의의 악몽을 떠올린다.
진보와 보수, 혹은 좌와 우의 이념대립은 어느 나라든지 경험하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극심한 갈등과 불신, 그리고 국론의 분열은 근대화 과정에서 겪어온 아픈 상처가 먼저 치유되어야만 극복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상처의 치유를 위해서는 가해자의 반성과 동시에 피해자의 용서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서로가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가 되는 상황이라면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서로가 자신은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상대방의 반성을 먼저 요구할 때, 갈등이 해소되기는커녕, 더 깊어지고 마음의 상처는 커질 뿐이다. 문제해결의 첫걸음은 자신이 피해자임을 강변하기에 앞서서, 먼저 자신이 가해자로서 상대방에게 입힌 피해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데 있다.
이번 헌재의 판결은, 대통령이 아무리 정치적으로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헌법을 위반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결론을 내렸다. 보수 여당이 헌재의 결정에 마음으로 승복하고 자기 잘못을 인정할 때, 지금까지 우리 국민이 근대화 과정에서 받아온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 비로소 시작될 수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자기 잘못을 먼저 인정하고 상대를 용서하는 편이 결국 진정한 승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성경에서 배운다. 야곱이 얍복강 가에서 하나님과 밤새 씨름하고 난 후에, 에서에게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밀어 극적인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졌다. 요셉은 형들의 미움으로 온갖 시련을 겪었지만 오히려 하나님의 섭리로 가족을 구하는 결과를 가져왔음을 알고 형들을 먼저 용서함으로써 평화를 가져왔다.
이번 탄핵을 계기로 우리나라가 이제 진정으로 과거의 아픈 상처를 서로 보듬고 치유하고 화해하며 상생의 길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김완진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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