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아-길리기아의 다소는 문화가 발달한 규모 있는 도시였습니다. 당시 스토아 철학자로 이름을 알리고 카이사르의 양자 옥타비아누스의 개인 교사이기도 했던 아테노도루스는 훗날 아우구스투스가 된 자신의 제자로부터 다소 통치를 위임받았습니다. 이후 아테노도루스와 그의 후임자들은 다소를 로마 문화가 중흥하는 도시가 되도록 힘썼습니다. 그래서 다소는 로마제국에서 손꼽히는 학문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다소의 지도자들은 ‘거의 모든 종류의 학문들’과 ‘백과사전적인 지식’을 구축하는 일에 많은 투자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다소는 덕분에 당대의 많은 지식을 보유한 도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알렉산드리아와 페르가뭄(버가모) 및 아테네 등과 아울러 큰 아카데미와 도서관을 보유한 도시로 유명해졌습니다. 그런데 다소의 학문 분위기는 다른 도시들과 사뭇 달랐다고 합니다.
지도자들은 세상 여러 곳에서 지혜로운 사람들을 모으고 교류하기보다 도시와 그 주변 길리기아 사람들끼리만 학문하고 교류하는 방식을 형성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소의 문화 분위기는 폐쇄적이었고 자기들만의 지적 교만에 빠져드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자기들만의 리그를 즐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소의 학자들은 경솔하거나 무례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결국 깊고 넓은 지혜를 원하는 사람들은 다소를 떠났고 다소는 다시 장사하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다소 사람들은 “지혜에 관하여 아테네보다 못한 열정”을 갖고 있었으며, “도시의 그 유명한 천짜기와 그것으로 돈을 버는 일”에는 더 많은 관심을 쏟았습니다.
바울은 이런 다소에서 성장했습니다. 바울은 그의 편지 곳곳에서 헬라철학에 대한 해박함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다소에서 배운 ‘그 세상의 지혜’를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떤 경우에도 헬라의 지혜가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능력보다 앞서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지식과 지혜를 배웁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은 그것이 십자가의 지혜를 넘어서도록 하지는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십자가 능력과 지혜를 더 사모하는 사람들입니다.
강신덕 목사
<토비아선교회, 샬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