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정신병력 의심해
미당 선생은 한 때 스스로 자기는 정신분열증과 같은 정신병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이 같은 사실은 정신과 전문의인 정유석 박사가 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 볼 수 있다.
시인 서정주 씨의 과거 병력을 조사해 보면 그는 1943년에 학질로 열병을 앓아 의식이 현실에 머물지 못하고 육체까지 대동하고 하늘을 둥둥 떠서 날아다니는 공중 유영을 경험했다. 이것은 나중에 진단받은 정신분열증과는 관련이 없는 심한 열병에 의한 결과다. 그는 1948년에 문교부 초대 예술과장을 하면서 위장병으로 고생했다. 또 20대부터 지녀오던 하혈병이 악화되었다. 그 결과로 피로가 쉽게 오고 심장까지 쇠약해졌다. 직장암이 있으면 알게 모르게 항상 조금씩 대변을 통해 신체에서 피를 잃는다. 그는 속이 나빠 점심으로 흰 무리떡을 한 덩어리씩 가지고 직장에 가서 그것을 물에 풀어 전기 곤로에 끓여 먹고 지냈다. 그래서 초대 대통령 이승만 씨는 그 모습을 보고 “남산골 샌님은 풀되죽만 마시고도 점잖게 이를 쑤셨네”라면서 속병으로 고통받는 그를 위로해 주었다. 그래도 그는 10대 후반부터 과도하게 술을 마셨는데 시인은 그 버릇을 ‘벼락 소주’라고 표현했다. 결국 젊어서부터도 안주나 영양분을 잘 섭취하지 않고 술만 많이 마신 후 자주 정신을 잃고 심하게 주사를 부렸음이 확실하다. 그러니까 한국전쟁 이후에 경험한 서정주 씨의 정신병은 악화 일로가 된 빈혈, 늑막염(당시 늑막염의 원인은 대부분이 결핵이었다), 심한 영양 실조로 인해 약해진 몸에다가 과로까지 겹치고 인민군에 쫓겨 자살까지 심각하게 고려해야 하는 스트레스 쌓인 사람의 분별없는 과도한 음주로 인해 발생한 정신병으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한 설명이 될 것이다. 알코올성 정신병에서 환각, 망상, 착각, 혼돈, 불안, 기억 상실과 함께 우울증 등은 자주 보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가 중년기에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버스 안에서 허리춤을 내리고 소피를 본 다음 승객 앞에서 “내가 천하의 서정주다”고 했다던 기행(奇行)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그것 역시 술에 취해 객기로 한 것이지 ‘정신분열증’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하겠다.(중앙일보 2008년7월 9일자 ‘서정주 정신병의 실체’에서 발췌)
미당 선생의 시를 읽고 연구하는 문단이나 학계에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에피소드이다. 미당은 스스로 정신병력이 있다고 말해왔던 생각을 정유석 정신과 의사가 정신분열증 환자는 아니라고 진단한 것이다. 이 칼럼은 미당 선생이 사거(死去)한지 8년 후에 공개한 글이다. 미당 선생의 이 같은 말은 서구의 시사적 흐름에 빠져 이도 저도 아닌 섹트주의에 빠져서는 안되겠다는 지적이다.

1991년에 낸 복간본 속 표지
박이도 장로
<현대교회•시인>
<바로잡습니다>
지난호 1913호 2025년 4월 5일자 문학산책 내용 중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 1883~1978)’를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 1915~2000)’로 바로 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