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죽음입니다. 인간은 죽음의 두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지금까지 노력해 왔지만 안타깝게도 아무도 해결하지 못한 채 깊은 시름에 빠져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사도 바울의 기막힌 고백을 통해 진짜 행복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비결이 무엇인가를 함께 살펴보며 은혜 나누기를 원합니다.
첫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라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갈2:20a)라고 고백합니다. 현대인들은 무한 경쟁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누구라도 짓밟고 올라가려는 이기주의, 개인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강조합니다.
왜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고백했습니까? 죽음에는 자연사, 질병사, 사고사 등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죽음은 의인으로 거듭나기 위한 죄인의 죽음이었습니다. 그는 율법과 죄에 대해 죽었습니다. 그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하여는 살았고, 죄는 극복되고, 은혜는 소생한 것입니다. 이는 죄악된 세상에서 다스림을 받고 살던 바울 자신이 죄악의 권세로부터 분리되었다는 것입니다.
아생(我生)즉 교사(敎死), 아사(我死)즉 교생(敎生)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살아있으면 교회가 죽고, 내가 죽으면 교회가 산다는 뜻입니다.
둘째,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게 하라
오늘 말씀 중반절에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2:20b)”고 고백합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고. 그러나 착각하지 맙시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 아닙니다. 부모님의 것도 아니요, 아내나 남편의 것도 아닙니다. 성도들은 누구의 것일까요? 사도 바울은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을까요? 이는 그리스도께서 바울 안에 내주하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고 바울의 인격이 완전히 상실되었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내가 살았으나 산 것은 내가 아니라”는 말도 그는 은혜의 역사 속에서 살면서 위로와 승리를 맛본다는 것입니다. 그 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는데 지금 그가 사는 것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이제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는 신비를 전해 줍니다. 이러한 결과는 그리스도와 연합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이 연합에 의해 그는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참했고 이에 힘입어 죄에 대해 죽게 되었으며 또한 이 연합에 의해 그리스도의 생명에 동참해 이 힘을 입어 하나님에 대해 살 수 있는 생명을 얻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내 인생은 오직 주인이신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을 치르고 나를 사셨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싸구려 존재가 아니라 값비싼 존재, 최고의 걸작품입니다. 이제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사는 것이 진정한 신앙입니다. 즉 죽어야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내 인생의 주인 되심을 고백하는 신앙입니다.
셋째, 믿음 안에 살아라
오늘 말씀 하반절에는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c)고 선포합니다.
인생은 어디에서 사는가가 중요합니다. 도시인가 농촌인가? 직장이나 가정, 부정한 삶, 죄악된 삶에만 빠져 살 것인가? 죄인들 안에서 살면 여전히 죄인이지만 의인들 안에 살면 의인이 됩니다. 성도는 어디에서 살아야 할까요? 바울은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산다고 고백합니다.
왜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산다고 고백했을까요? “그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곧 믿음에 의해 사는 것이라”는 신비를 전해줍니다. 외적으로 볼 때,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살았고, 그의 자연적 생명도 같은 방식에 의해 유지되었습니다. 그는 자기를 지지해 주고 생기 있게 해 주는 보다 높고 고귀한 원리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었으며 이 믿음을 통해 특히 그리스도께서 그를 위해 자신을 주신 놀라운 사랑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때문에 그는 육체에 따라 살았지만 그는 육체대로 산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믿음이란? 신뢰와 확신과 보증입니다. 참 신앙이 우리에게 주는 위대한 것은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우리가 그를 위해서 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주를 맞아들임은 주를 믿음으로 살겠다는 것입니다. 즉 죽어야 산다는 것은 주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 시민으로 사는 것입니다. 고난주간에 나를 위해 고난당하신 주님을 생각하며 죽어야 산다는 교훈을 마음에 새기며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서 주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심을 고백하며 오직 주님만 믿고 살아가는 명품 크리스천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박순희 목사
<미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