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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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꿈대로 현실이 잘 따라주지 않아서 고뇌와 갈등을 가지게 된다. 나도 역시 그랬다. 유학을 가겠다는 원대한 계획들이 모두 다 수포로 돌아가 버리고 하루하루의 삶이 너무나 무의미하고 지루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할까 고민했다. 빵 하나 사들고 나를 알지 못하는 조용한 곳으로 가서 울고 싶을 때가 많았다. 아침에 반찬 없는 보리밥으로 한 끼를 때우고 수유동 계곡 골짜기에 가서 흘러내리는 물소리를 들으며 나무를 바라보고 대화했다.

‘나는 언제 남과 같이 떳떳하게 나서서 친구를 만나고 남처럼 베푸는 삶을 사는 날이 있을까’하고 이 궁리 저 궁리를 했다. 그러던 중에 하나의 새로운 생각이 떠올랐다. 당시는 5.16 군사 정부가 통치할 때였다. 비록 대통령은 만나지 못할지라도 국무총리라도 만나서 면담하고 다만 몇 푼이라도 얻어서 재활의 길을 개척하려고 결심했다. 그 다음날 나는 중앙청으로 가서 국무총리를 만나게 해달라고 경비원들에게 사정했다. 그때마다 국무총리는 청와대에 갔다거나 회의 중이라고 해 만날 수가 없었다. 며칠을 계속 중앙청 정문을 찾아가 국무총리를 만나겠다고 버텼다.

그러다 보니 그곳의 경비원들하고 친숙해졌다. 함께 아이스케키도 나누어 먹고 밥풀과자도 나누면서 얼굴을 익혔다. 그중에 한 경비원이 여기서 총리를 만나기 어려우니 삼청동 공관으로 가보라고 알려 주었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다음날 아침 국무총리가 출근하는 시간에 맞추어 삼청동에 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군인들이 중앙청 정문보다 더 철통같은 경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시각장애인들의 복지 문제를 국무총리와 의논하고 싶어서 찾아왔다고 했다. 그들은 공관으로 오지 말고 중앙청으로 가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중앙청에서 만나려고 했으나 그곳 경비원이 공관으로 가보라고 해서 왔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경비 초소 근처에도 오지 못하게 했다.

잠시 후 초소에 들어가 모든 사정 이야기를 했다. 그들은 공관에서는 면담하는 예가 없으니까 다시 중앙청 집무실로 가라고 했다. 세상을 모르는 순박한 나는 그대로 믿고 다시 중앙청으로 갔다. 중앙청으로 다시 가니 안면 있는 경비원들이 왜 또 왔느냐고 물었다. 삼청동은 경비가 너무 심해서 도저히 근처에 갈 수 없다고 했더니 아침에 가지 말고 퇴근 시간에 가 보라고 했다.

나는 꽈배기 하나로 점심을 때우고 덕수궁 뒷담을 몇 번씩 돌면서 저녁 때가 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퇴근 시간에 맞추어 광화문 옛 경기여고를 거쳐 옛 시민회관(현 세종문화회관) 앞을 지나 삼청동으로 향했다. 근무 교대를 한 경비원들이 낯선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여기며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했다. 허술한 옷차림을 한 젊은 시각장애인이 국무총리를 만나겠다고 하니 정신병자 취급을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나쁜 사람도 아니고 정신병자도 아니다. 앞으로 큰 꿈을 가지고 일하려고 하는데 도움이 필요해서 국무총리와 면담하려 한다”고 뜻을 밝혔다. 그 당시 나는 주민등록증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다만 신학생 때 가지고 있던 학생증이 나의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나는 학생증을 보이며 장차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 일할 사람이라고 말하니 경위 계급을 단 경찰관이 좋은 방법을 알려 주겠다고 했다.

총리 부인이 청구동 자택에 주로 있으니까 그곳에 찾아가 보라고 했다. 그 경위는 약도를 자세히 그려 주었다. 그래서 나는 다음날 아침에 교회 고등부 시절에 가르쳤던 제자와 함께 청구동 총리 자택을 찾아갔다. 총리 부인을 만나게 해달라고 경비원에게 호소했다. 경비원은 자꾸 괴롭히면 경찰을 부르겠다며 욕설을 퍼부었다.

청구동 자택으로 세 번이나 찾아간 나는 생각을 바꿔 중앙청에 다시 가기로 결심했다. 그날 밤에 나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공병우타자기로 쳐서 다음날 아침 중앙청 경비실로 갔다. 나는 이런 사람인데 총리 비서실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했다. 그중에 한 사람이 나의 정성이 지극하다며 비서실에 연락해 주어서 난생 처음으로 중앙청 안에 있는 총리 비서실에 들어가게 되었다.

더운 여름날 중앙청 뜰에 있는 나무에서는 요란하게 매미들이 울었다. 비서실 앞에 30~40분을 기다렸더니 들어오라고 했다. 비서관이 무슨 이유로 총리를 만나려고 하는지 물었다. 나는 밤새 작성한 글을 보여 주며 총리와 면담하게 해달라고 했다. 그 비서관은 놓고 가면 검토해 보고 곧 연락을 하겠다고 했다. 나는 임마누엘 여 시각장애원 전화번호를 남기고 돌아왔다.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당시 대통령과 국무총리에게 20~30통 이상의 호소문을 보냈으나 아무런 해답이 없었다. 국무총리를 만나면 모든 일들이 해결되리라고 기대했으나 그것도 역시 헛일이었다.

김선태 목사

<실로암안과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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