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도의 문학산책] 선시(禪詩) ‘내가 돌이 되면’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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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의 윤회적(輪廻的) 세계관

<내가/돌이되면//돌은/연꽃이 되고//연꽃은/호수가 되고//내가/호수가 되면//호수는/연꽃이 되고//연꽃은/돌이 되고.>(‘내가 돌이 되면’ 전문)

미당의 시적 상상력은 불교적인 세계관과 토속적인 무속신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내가 돌이 되면’은 윤회설을 선문답식으로 풀어본 선시이다. 그의 많은 작품이 이 같은 불교적 세계관을 다루고 있으나 이 작품은 마치 선승의 선문답같이 아주 간명하게 설파(說破)하고 있다. 이와 비견되는 기독교 신앙에 적중(的中)하는 시인 김현승씨의 작품을 보자. 

<당신의 불꽃 속으로/나의 눈송이가/뛰어듭니다.//당신의 불꽃은/나의 눈송이를/자취도 없이 품어줍니다.>(‘절대신앙’의 전문)

이 작품 역시 기독교를 믿는 사람의 신앙적 집중과 성취감을 보여주고 있다.

내가 처음 시 읽기에 빠졌던 청소년기에 서정주 시인의 작품들에서 형언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다. 우선 감각적인 어휘들이며 토속에 바탕을 둔 발상법 따위가 나를 크게 자극했다. 미당 선생의 정신적 편력은 그의 시대와 더불어 영욕이 교차한다. 그는 “싸락눈 내리어 눈썹 때리니/그 암무당 손때 묻은 징채 보는 것 같군./그 징과 징채 들고 가던 아홉 살 아이-/암무당의 개와 함께 누릉지에 취직했던/눈썹만이 역력했던 그 하인 아이/보는 것 같군./내가 삼백 원짜리 시간 강사에도 목이 쉬어/인제는 작파할까 망설이고 있는 날에/싸락눈 내리어 눈썹 때리니…”(‘싸락눈 내리어 눈썹 때리니’의 전문) 같은 푸념을 드러내기도 했다. 삶의 고달픔을 굿판에서 볼 수 있는 무녀(巫女)의 행태에서 보고 느꼈던 처연(悽然)함을 일상의 고단함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의 생가인 고창군 부안의 미당문학관에는 그가 쓴 일본군을 찬양하고 기리는 시 ‘오장 마쓰이 송가’(1944년 12월 매일신보에 게재) 등 여러 편의 친일 관련 작품도 전시하고 있다. 전시 중인 ‘오장(伍長) 마쓰이 송가(頌歌)’는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오장 우리의 자랑/그대는 경기도 개성 사람/인씨(印氏)의 둘째 아들/스물 한살 먹은 사내//그대는 우리의 특별 공격대원”이라는 대목이 보인다. 가미가제 폭격기를 몰고 미국의 함대로 돌진해 자살하게 한 것은 일본 천황의 범죄행위였다. 그런데 미당 선생의 유족들은 가미가제(신풍(神風))로 자살을 강요하는 전쟁을 미화했던 치욕의 미당의 시를 전시하도록 결심한 것이다. “국민에게 사죄하는 길”이라는 뜻에서 실행된 것이다. 나는 미당의 문학적 성취와 인간적 과오를 어느 한쪽으로 평가하는 것은 자칫 교각살우의 누(累)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을 우려한다. 

내가 미당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자유신문’ 신춘문예 시상식장에서였다. 1959년 초 시상식 날, 심사를 맡았던 선생님은 한복을 입고 참석하셨다. 그날 한복 차림의 인상이 오랫동안 내 기억에 남아 있다. 나는 그 후 곧 육군에 학보병 신분으로 입대해 1년 반 만에 귀휴 조치로 제대하게 되었다. 제대 후 나는 공덕동 언덕바지의 선생님 자택을 몇 번 방문한 적이 있다. 

박이도 장로

<현대교회•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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