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몸 담고 있는 기독교가 세상의 다른 모든 종교와 가장 뚜렷하게 다른 점이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라는 것이다. 세상의 다른 어떤 종교도 그 창시자가 죽음에서 일어나 부활했다는 복음이 없다. 모든 종교의 창시자들은 다 낳고, 살다가, 죽었다. 불교를 창시한 부처도 죽었고, 회교를 창시한 마호메트도 죽었고, 유교를 창시한 공자도 죽었다. 모두가 다 무덤을 자랑할 뿐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가 사흘 만에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외한 그 누구도 죽음에서 다시 일어난 인간이 없다. 오직 예수님만이 죄와 사망의 권세를 물리치고 부활하셨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이다.
그러기에 기독교는 부활절을 1년 중 가장 중요한 절기로 지키고 축하한다. 부활절은 교회의 가장 중요한 절기로서 부활주일 아침부터 시작되어 50일간 계속되는 절기이다. 다시 말해서 부활절은 부활주일부터 시작해 오순절 성령강림주일에 그 절정을 이루는 50일간의 기쁨의 절기이다. 그래서 이 절기를 ‘큰 기쁨의 50일’(The Great 50 Days)이라고도 부르는데, 초대교회 교인들은 부활주일부터 오순절 성령강림 때까지 완전한 기쁨과 승리의 확신 가운데 이 절기를 축하했던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 한국교회는 이 소중한 부활절을 부활주일 단 하루만의 절기로 착각하며 보내고 있다. 그래서 성도들이 부활절을 하루의 잔치로 생각하고, 부활주일에 단 한번 “주님 부활하셨다! 사셨다!”를 외치고는 그 다음 주일부터는 부활에 대한 내용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린다. 심지어 교회의 목회자들조차 7주 동안 계속되는 이 기쁨의 부활절기 동안에 고난과 환란에 대해서 설교하기도 하며, 십자가에 대해서 설교하기도 한다. 이것은 부끄럽고 안타까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부활절은 하루의 축제가 아니라 50일간의 기쁨의 절기이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부활절이 가진 중요성과 신학적인 의미에 대해서 분명히 알고 이 소중한 절기를 지킬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부활절의 가장 중요한 신앙적이고 신학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먼저 부활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님이시다”(Jesus is Lord)라는 사실을 선포하는 절기이다. 우리의 주님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안에서 이루어졌다. 예수님께서 죽음으로부터 들림을 받아 생명으로 옮아가신 것처럼, 성도들도 죄와 사망에서부터 예수님과 함께 생명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이러한 믿음과 확신을 부활절을 지키는 가운데 선포하고 재현하게 된다.
또한 부활절은 삶과 죽음을 포함한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경험을 예수님께서 친히 경험하신 후에 죽음을 물리치고 부활하심으로, 앞으로 우리 성도들에게도 일어날 부활을 선취적으로 보여주심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즉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일으키심을 받았다는 사실은 미래의 모든 인간의 일반적인 부활을 포함하는 종말론적인 사건이 역사 위의 한 인간 예수에게서 선취적으로 일어남을 뜻한다. 그리스도는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고전 15:20)로서 하나님에 의해 일으킴을 받았다. 그의 부활은 죽은 자들의 일어남의 시작이요(고전 15:23), 기초이다. 이처럼 예수님의 부활은 그리스도와 같이 우리도 부활할 수 있다는 믿음과 함께 우리 모두에게 참된 소망을 가져다 준다. 즉 예수님께서 영화로운 몸으로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 삶의 변화를 위한 참된 소망과 진정한 용기를 가져다준다. 그러므로 부활은 우리 성도들의 신앙의 핵심이며, 우리의 믿음과 소망의 근원이다.
그러하기에 초대교회는 우리의 참된 소망의 근원인 예수님의 부활을 하루의 행사로 만족할 수 없었고, 부활의 감격과 기쁨을 50일 동안 축하했던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이 놀라운 부활의 신비를 다 경험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50일간의 기쁨의 잔치는 오늘도 우리들의 마음과 신앙생활 속에 그리고 한국교회 속에서 이어져야 한다.
한국교회는 이 ‘기쁨의 50일’ 동안의 부활절기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제부터라도 초대교회의 가장 중요한 신앙고백, 즉 부활신앙을 담고 있던 이 ‘기쁨의 50일’을 회복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부활주일 하루만으로는 안 된다. 50일의 전 기간이 기쁨의 잔치의 기간이 되어야 한다. 이제는 부활주일 하루에만 주님의 부활을 선포하고 계란을 나누어 먹은 다음 그 다음주부터는 다시 고난과 수난을 되풀이하는 그런 상식 없음에서 벗어나야 한다.
주승중 목사
<주안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