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 행복한 선택  박래창 장로의  인생 이야기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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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내 갈등 ‘선한 싸움’으로 아름답게 승화시켜

‘항아리 물 채우는 일까지는 할 수 있다’는 자세

선입견 갖지 않고 성가대장으로서 사명 감당

그렇게 생각하니 어떤 상황에서도 나 개인의 감정이 얽혀 들어가지 않았고 편견과 비난 앞에서도 자유로웠다.

한번은 교회 장로 19명이 연서로 나를 검찰에 고발한 일이 있었다. 이 일 이전에 소망교회 부목사 두 명이 당회장실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담임목사를 폭행한 사건이 있었다. 이 일로 김지철 목사님은 중상을 입고 119에 실려 가시기도 했다.

그 일이 있은 직후 나는 노회 신년 하례 모임에 참석했다. 이미 TV와 신문에 크게 보도된 터라 궁금해 하는 노회 참석자들이 많았기에 하례 마지막 시간에 짧게 사건 경과를 보고했다. 주일 1부 예배 직후에 그 사건이 있었기에 2~5부 예배는 1부 예배 영상으로 대신했다는 내용, 김 목사님은 현재 삼성병원에 입원해 계시다는 것, 이 소식을 들은 이명박 대통령께서 안부 전화를 주셨고, 그 따님들을 병원으로 보내 문병했다는 내용을 전했다.

그런데 이후 모 일간지에 “청와대 확인해보니 이 대통령이 그런 전화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대통령의 입장을 헤아려 보면 그런 기사가 나게 된 정황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건만, 담임목사 반대편에 선 장로 19명은 이 기사를 근거 삼아 나를 허위사실 유포죄로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사실 확인 후 무혐의로 처리했다. 그 과정에서 변호사 비용도 적잖게 들었고 신경도 많이 써야 했다. 알아보니 19명 중에는 실제 서명을 하지 않고 이름이 도용된 이도 있었다. 변호사는 “이 부분을 역으로 고소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교회를 지켜야 하는 목적과 가치가 더 크기 때문에 개인적 명예 손상이나 금전적 손해는 감내할 수 있었다. 또한 그들과 나 사이에 개인적인 이해관계나 원한관계가 전혀 없음은 서로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차이가 있다면 교회 운영 과정에서 가지게 된 정치적 가치관의 차이일 뿐이다. 그럼에도 교회 내 분쟁이 물리적, 폭력적, 법적 싸움으로까지 진행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이런 생각 때문에 누가 나를 고소‧고발한 데 대해서는 최선을 다해 방어했지만 절대로 맞서서 소송을 걸지는 않았다.

주변에서는 내가 이런 갈등 가운데서 거의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점을 신기해한다. 전전긍긍한 적도 잠을 못 이룬 적도 없다. 그 비결은 항상 교회 일을 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물이 포도주로 변한 그 혼인 잔치에서 “돌 항아리에 물을 채우는 종의 역할까지”일 뿐이라는 것을 분명히 아는 데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가나안 혼인 잔치에서 일꾼들에게 “이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말씀하셨다(요 2:7). 그들은 항아리마다 물을 아귀까지 채웠다. 일꾼들은 물을 채우면서 포도주로 변하게 할 것까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돌 항아리에 물을 채우는 일은 종들이 할 수 있는 일이고 어려운 일이 아니다.

교회 일 중에서 생소하고 부담스러운 일을 맡게 될 때마다 나는 ‘하인들은 돌 항아리에 물을 채우는 일까지는 할 수 있다’는 심정으로 부담 없이 시작한다. ‘이 물이 반드시 포도주로 변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라고 걱정하거나 조급해하지 않았다. 수고했으니 그 결과가 꼭 좋으리라고 지나친 기대를 하지도 않았다. 결과가 좋으면 행복한 것이고 그렇지 못해도 좌절하고 실망할 필요가 없다.

목적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본질을 잃어버리고 변칙에 빠지게 될 뿐이다.

사랑할 대상과 함께 행복하라

하나님의 일은 끝까지 선한 분별력을 가지고 악한 방법을 멀리하는 선한 싸움으로 극복해야 한다. 그러면 모두가 이긴다.

소망교회는 2년마다 보직을 바꾼다. 장로로 시무하면서 교육부와 성가대 등 여러 부서장을 맡았다. 그중 갈등이 심하다고 소문난 부서의 책임을 맡은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런 인사 발표가 나는 싫지 않았다.

한번은 유달리 문제가 많기로 알려진 H 성가대의 대장을 맡게 됐다. 1985년쯤부터 3년여 동안 심각했던 담임목사(곽선희 목사)와 일부 장로들 간의 갈등 후유증이 계속 남아 있는 부서였다. 그 탓에 2년마다 교체된 성가대장들은 모두 어려움을 겪었다. 새로 임명된 성가대장마다 따돌림을 당하고 아무 역할도 못한 채 2년의 임기를 겨우 마치거나, 또는 못마치곤 했다.

그런 상황인지라 전임자는 내가 H 성가대장 보직을 받은 직후 찾아와 이런저런 정보를 주려고 했다. 나는 듣지 않겠다고 거절했다. 보통은 신임으로 보직을 맡은 대장이 연말 송년 총회에 참석해서 인사한 뒤 임원 구성에 관여하곤 했지만 나는 “아무 정보도 필요 없으니 새해 임원 조직까지 아예 완성해서 넘겨 달라”고만 청했다. 선입견을 갖지 않기 위해서였다. 누가 무슨 일로 불만을 가지게 됐는지를 들으면 나도 선입견을 갖게 된다. 그래서 나는 백지상태로 대면을 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교회 안에서 건강한 발전을 위해 의견 차이는 있어야 하고 서로 존중하면서 극복할 과제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성가대와의 첫 대면 날, 어느 정도 예상하고 갔음에도 냉랭함은 놀랄 만큼 심했다. 성가대석에 꽉 차게 앉은 150여 명의 눈빛을 한 몸에 받으며 서 있자니 서늘하기까지 했다. 팔짱을 낀 사람들은 ‘얼마나 버티나 보겠다’는 무언의 압력을 보내고 있었다. 전 성가대장이 임명한 임원들이 못하겠다고 줄줄이 사의를 표했다. 설득해본 후 끝까지 거부하는 임원은 교체했다. 이런 상황을 내가 나서서 해결하겠다고, 갈등을 풀어보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논리적인 조직관리 방법들은 상황에 좋을 때에나 가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성가대장은 2년마다 새로 오고 가지만 대원들은 길게는 20년 이상 한 부서에서 근속한 기득권자들이다. 나보다 성가대에 대한 것들을 더 많이 알고 지난 역사를 꿰고 있는 사람들이다.

박래창 장로

<소망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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