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만 뜨면 무엇인가를 바라보면서 산다. 무의식적으로 눈앞에 물체들을 보고 산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고 무엇을 처음으로 보는가? 눈앞에 펼쳐진 것을 무심히 본다. 하지만 아침에 눈을 뜨면서 어떤 의미를 두고 앞을 보는 날이 있다. 주방에서 북쪽으로 난 창을 열면 통일로가 북으로 주욱 누워있다. 사는 아파트가 20층이라 꽤 멀리까지 그 길이 보인다. 이른 새벽에도 많은 차들이 달린다. 저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개성을 지나 평양까지 갈 수 있는 길인데 저 차들은 아마 문산 어디쯤까지가 거의 목적지일 것이다. 거기 생각이 미치면 목이 멘다.
아버지가 북괴의 손에 끌려간 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항상 편치 않은 곳이다. 그런데 날마다 그곳을 누비며 살아간다. 참 사람의 일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어머니가 생전에 이쪽 길로 다니지 말라고 그토록 일렀건만 평생을 여기서 맴돌며 산다. 은평으로 시집와서 오늘까지 여기를 못 벗어나고 살았다. 그동안 앉아서 돈 손해도 많이 보았다. 부동산이 전혀 재테크에 도움을 주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본전을 갉아먹어서이다.
어느 날인가 그 길에 수많은 관광객이 탄 버스가 줄을 잇는 환상을 그려보게 되었다. 비록 내 생전이 아니더라도 내 아이들은 그런 버스를 타고 평양으로 신의주로 달려 올라갈 것이다. 그래 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이왕이면 희망을 보자. 예수님의 고난이 머지않아 시작되리라. 하지만 그 고난을 보고 슬퍼하기보다 그 뒤에 예비하신 구원과 회복을 보고 기뻐할 수 있는 차원 높은 믿음에 푹 빠지기를 바란다.
사람이 무엇을 보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생각하고 대상을 보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 분명하다. 소망을 본다. 하던 일이 끝났다. 허탈해할 것이 아니라 더 중요한 일을 위해 충전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우리의 젊은이들이 이런 소망을 갖도록 어른들이 돌봐주고 이끌어주며 용기를 주고 다독여줘야 한다. 앞길이 구만리 같은 청년들이 좌절과 절망 속에서 죽음을 생각한다는 보도는 가슴을 아리게 한다. 그들의 마음속에 주님이 계시면 절대로 그런 고통에 허덕이지 않을텐데 그들은 푯대 없이 방황하고 있다. 그들을 품어야 한다.
오경자 권사
신일교회,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