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저일 생각하니] 거짓정치 4.19정신으로 나라 바로 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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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4.19는 65돌을 맞는다. 1960년 4월 19일 피의 화요일 나도 신촌 연세교정에서 중앙청 앞까지 책가방 들고 뛰었다. 대구 8개 남녀고교생들이 1960년 2월 28일 일요일 등교시킨 학교당국에 항의 시위를 했다. 그것은 야당 부통령 후보 장면 박사 선거유세가 수성천변에서 있어 여기 학생들 불참을 시키기 위해 일요등교를 시켰다. 학생을 정치에 이용하지 말라며 민주시위를 한 대구 2.28 시위는 대전 부산 마산으로 흘러갔다. 마산 학생들이 “부정선거 다시하라”고 외치는 시위 중에 경찰의 총칼이 무자비 했다. 수감학생 석방을 요구하는 마산 학생들 시위가 진행되던 중 4월 11일 마산상고 1학년 김주열군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 앞바다에서 낚시꾼 낚시에 걸려 떠올랐다. 

이 사건은 국민의 분노를 자극했다. 서울 고려대생 3천 명이 ‘4.18 선언문’을 낭독하고 “기성세대는 자성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세종로 당시 국회의사당 앞까지 시위를 했다. 안암동으로 돌아갈 때 동대문 깡패 이정재 임화수 유지광 부하들의 습격을 받아 많이 다쳤다. 이 고대생 깡패 습격사건도 부정선거사건과 함께 국민의 분노를 일으켰다. 바로 다음날 전국 백만학도는 총궐기해 “부정선거 다시하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외치며 서울의 학생들은 경무대까지 가서 시위를 벌였다. 결국 대대적인 4.19시위로 꽃봉오리인 채 피지도 못한 새파란 학생 186명이 희생되었다. 현재 서울 우이동 4.19 성역에 잠든 이 186명의 순국희생학생들의 공로가 죽어가던 우리 민주주의를 살려냈다. 

이 위대한 4.19정신은 우리 헌법전문에 올라있다. 3.15 부정선거 원인은 “못살겠다. 갈아보자” 선거구호와 함께 해공 신익희 선생과 장면 박사가 야당 정부통령으로 나왔을 때 신익희 선생이 호남선 열차에서 급서해 국민은 대통령은 이승만 부통령은 야당 장면을 뽑았다. 4선에 나온 유석 조병옥 박사 장면 박사가 정부통령으로 나오자 여당 후보로 이승만하고 부통령에 나온 이기붕은 장면에게 또 패배할까 트라우마가 컸다. 그 때문에 3.15 부정선거를 꾸민 것이다. “죽나사나 결판내자” 선거구호로 대통령 후보가 된 조병옥 박사가 미국 월터리드 미육군병원에서 2월 15일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4선 대통령도 조봉암을 제끼고 이승만의 당선이 확정적이었다. 국회의장 출신 이기붕의 당선이 문제였다. 이기붕과 부인 박마리아 지시를 받은 내무장관 최인규는 선거 주무자로 사전에 투표함에 자유당 표를 40%를 미리 넣어 두었다. 결과는 이승만 이기붕이 압도적으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엄청난 3.15 부정선거 책임을 느낀 이승만은 교수 258명의 시위를 보고 12년 자유당 독재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 허정 임시 내각을 지명해 두고 하와이로 망명갔다. 이기붕 일가는 피신할 곳이 없어 경무대 관사에서 4월 29일 이승만의 양아들로 갔던 육군본부 의장대 소위 이강석 장남이 부모 이기붕 부정당선 부통령 이화여대 부총장 박마리아 그리고 연세대 상대 1학년 이강욱 동생을 권총으로 사살하고 자기도 권총으로 자살했다. 

한때 서대문 경무대로 불리며 권력이 막강했던 이기붕은 한가족 집단 자살로 정치비극의 말로를 보여 주었다. 학생 4.19 시위로 정권을 잡은 민주당은 신구파 싸움질 끝에 구파 윤보선 대통령, 신파 장면 국무총리 내각제 정치를 했으나 무능해 5.16 박정희 소장의 군사정변으로 정권이 8개월만에 무너졌다. 박정희 대통령 권한대행이 3.15 부정선거 원흉으로 최인규 내무장관, 동대문 깡패 두목 이정재, 임화수, 경무대경찰서장 곽영주 그리고 반공법으로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가 사형을 당했다. 현재 거짓 많은 우리 여야 정치가 186명의 학생 희생과 전국 백만 학도가 이룩한 헌법전문 4.19정신대로 정의 자유 평화가 꽃피는 바른 나라로 꽃피워 가야 할 것이다.

오동춘 장로

<화성교회 원로, 문학박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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