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 행복한 선택  박래창 장로의  인생 이야기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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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해소 위한 작은 시작… 사랑의 마음 전해

진심의 순도 높이기 위해 시간·노력 필요

작은 티셔츠로 무겁던 마음 문 하나로 열려

내가 고심 끝에 처음 한 일은 총무에게 부탁해서 매주 찬양 연습이 끝나고 헤어지기 전 마지막 3~5분간의 총무 광고 시간을 내가 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대원들과 소통할 시간은 이때뿐이다. 주일 아침 일찍 와서 연습하고, 예배 찬양하고, 예배 후 남아서 또 다음 주 찬양 연습을 하고 난 뒤의 마무리 시간이기에 다들 엉덩이가 들썩들썩하게 마련이라 몇 마디 짧은 공지사항을 전하는 정도만 용납되는 시간이다. 이 시간을 가지고 소통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식도 상식도 신앙도 그들보다 낫다고 내세울 게 하나도 없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그들을 설복시키는 게 아니었다. 나는 그 시간을 통해 그저 “여러분을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동안 많이도 속상했던 상처받았던 당신들을 사랑하러 왔다고 알려주고 싶었다. 위로하고 섬기겠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교회 갈등은 옳고 그름 아닌 생각 차이

생각해보면 이해 못할 것도 없다. 1985년의 갈등의 원인은 교회 증축을 시작하자는 쪽과 조금 더 천천히 하자는 쪽의 의견 대립에서 비롯됐다. 800명 규모로 건물을 신축한 지 5년 만에 3천 명 규모로 다시 건축을 하겠다는 곽 목사님의 뜻과 이를 반대하는 쪽의 대립이었다. 이것이 담임목사에 대한 찬반 입장으로 양분돼 깊어졌다. 이때 반대의 뜻을 관철시키지 못했던 쪽의 반감이 치유되지 못한 채로 많은 분들이 교회를 떠났다. H 성가대원 중 일부는 당시 반대파였다가 남은 분들이었다.

결국은 양쪽 다 교회를 위해 잘 해보자는 것인데, 생각이 다름을 조절하지 못해 충돌이 일어난 것일 뿐이다. 생각할수록 안타깝다. 참 훌륭한 하나님 일꾼들이 한때의 갈등을 극복하지 못해 상처받고 교회를 떠나 방황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처음에는 누구나 교회가 더 잘 되기를 바라는 열정으로 임한다. 그러다 갈등하고 충돌하면서 곧 ‘상대방 방법보다 내 방법이 옳다’는 집착이 커진다. 어떻게든 이기려고 기싸움을 하다가 약점을 잡고 비난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문서를 써서 돌리는 것으로 시작해 종내는 고소‧고발까지 가고야 만다. 그렇게 되면 본질은 멀어지고 싸움만 남는다. 여기서 더 가면 온갖 폭력적 수단이 동원된다. 교회 분쟁이 종점으로 치닫게 되는 것이다. 이럴 때 한 편이 수세에 몰리게 되면 그 편에 속한 사람들은 설욕하기 위해 더욱 죽기 살기로 쟁투한다. 여기까지 이르면 수습이 어렵다. 누가 잘하고 누가 잘못했다고 아무도 판단할 수 없다. 같은 편끼리도 삼삼오오 짝을 이뤄 서로 갈등한다.

그렇게 잘못된 길을 가는 줄 다 알지만 그렇다고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는 돌아갈 수도 없는 사람들, H 성가대원들이 대부분 이런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자 두려운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 외롭고 답답한 마음들을 나 하나라도 감싸주고 싶었다.

‘당신들을 이해한다, 사랑한다’는 뜻을 전하기 위해 나는 매주 한 편의 스토리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한 주 동안 내 삶의 일상의 사건들과 내면의 깊은 곳에 있는 진심을 담아 스토리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진심의 순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매일 저녁 성가대원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떠올리며 기도하고 스토리를 다듬고 또 다듬었다. 그러자 처음에는 내가 말을 시작하면 ‘저건 또 무슨 흰소린가’하는 표정으로 듣던 성가대원들이 차츰 진지한 표정으로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훈계를 하려는 게 아니라 사랑을 고백하는 이야기라는 것을 느끼는 듯했다.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거나 노골적으로 지루한 표정을 짓던 사람들이 갈수록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 시간을 즐기기 시작했다. 크리스천들은 유년시절부터 듣는 훈련이 잘되어 있는 것에 호소하기로 했다. 날이 갈수록 점점 분위기가 풀어지니 서로 간에 배타적인 경계심도 풀어져 나갔다. 돌처럼 무겁던 마음의 문이 열려 가는 것이 보였다.

갈등 해소의 실마리가 보인다 싶었을 때, 나는 그 여세를 몰아 “1박 2일 기도회를 갑시다”라고 제안했다. 아니나 다를까 부정적인 반응이 먼저 나왔다. 임원 중 한 사람이 내게로 와서 이렇게 말했다.

“가려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겁니다. 오죽하면 성가대가 생긴 이래로 한 번도 수련회나 기도회를 가본 적이 없겠습니까. 2년 전에는 다 준비했다가 하루 전 날 취소된 적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염려하는 그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해봅시다”라고 했다.

수련회 출발 사흘 전쯤, 찬양 연습이 끝나는 시간에 티셔츠 한 장을 가지고 교회로 갔다. 가슴과 팔, 등 부분에 H 성가대 로고 디자인을 넣어 예쁘게 프린트한 티셔츠였다. 이 성가대 로고는 사업상 협력 관계인 특급 디자인 회사에 부탁해 만든 것으로, 최고의 디자이너들이 머리를 맞대고 ‘작품’ 수준으로 멋지게 디자인해준 것이었다.

“여러분, 이게 뭔지 아시겠어요? 이번 수련회 때 입을 옷입니다. 같이 입고 출발할 수 있게 당일 아침에 나눠드리겠습니다.”

모처럼 관심이 집중되는 것이 보였다. 성가대원들은 내가 앞뒤로 펼쳐 보이는 티셔츠를 바라봤다. 그리고 수련회 당일,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성가대원 모두가 참석한 것이다.

모두 똑같은 로고가 박힌 헐렁한 하얀 티셔츠로 갈아입고는 마주 보며 서로 놀란다. 함께 밥 먹고, 사진 찍고, 기도하고, 찬양하면서 마음을 열고 서로의 간증을 들으며 밤이 새도록 이야기를 나누는, 지극히 평범한 수련회가 드디어 시작된 것이다.

티셔츠는 그 시작을 여는 작은 단추였다. 때로 사람들에게는 작은 동기가 필요하다.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가고 맞아줄 작은 구실이 필요한 것이다.

박래창 장로

<소망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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