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산책] 다시 보고 싶은 ‘설악산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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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대학에서 『영자(英字) 신문반』을 지도하던 때의 이야기이다. 여름방학이 시작되면서 신문반 학생 10명을 인솔하고 수련회를 위해 강원도 설악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대전 시외[現복합]버스터미널에서 버스 편으로 출발해 강원도 속초에 닿았고 다시 속초에서 설악산으로 가는 시내버스에 올랐다. 그 시간이 마침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하교시간이어서 시내버스는 중고등학교 학생들로 만원이었다. 나는 우리 학생들 덕분에 자리를 잡고 앉을 수가 있었다.

이때 내 앞에 교복을 입은 중학교 1학년쯤으로 되어 보이는 귀여운 여학생이 가방을 들고서 버스가 움직일 때마다 몸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학생, 내가 가방을 받아 줄까?” “괜찮아요, 아저씨.”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의 예의이지. 어서 가방을 이리 줘.” “아저씨, 고맙습니다.” 버스 안의 많은 승객들에 떠밀려서 내 코앞에 서있는 이 여학생이 입고 있던 얇은 흰색 하복 상의 주머니 속에는 초록색 플라스틱 바탕에 하얀 글씨로 ‘백윤희’란 명찰이 선명하게 겉으로 비쳐보였다. 학생들이 내리면서 버스 안에 공간적인 여유가 생기자, 내가 어린 여학생에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그런데 윤희는 어느 학교에 다니지?” (윤희는 손으로 자신의 명찰이 밖으로 노출되지 않고 주머니 속에 안전함을 확인하고서) “저 ‘송녀중’에 다녀요. 어머, 그런데 아저씨가 어떻게 제 이름을 아세요?” “응, 나도 선생님이니까.” 나는 의도적으로 ‘동문서답(東問西答)’을 함으로써 농담임을 암시했으나 이 여학생이 너무 착하고 순진해서 그런 내 의도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송녀중’은 그 지역이 ‘속초’이므로 ‘속초여중’이 줄어서 ‘속여중’이 된 것이고 자음접변 현상으로 ‘송녀중’으로 발음되는 것이로구나 하고 유추(類推)할 수 있었다.

“선생님,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내 이름? 그건 비밀이야.” “지금 속여중의 저희 담임선생님은 국어과목을 가르치시는 김권호 선생님이신데요.” “그래? 김 선생님은 몇 학년 몇 반 담임이신데?” “1학년 3반 담임선생님이세요.” 이렇게 본인의 입으로 술술 자신의 정보를 구체적으로 공개해 주니 내가 연출한 연극은 별로 힘들이지 않고 ‘점입가경(漸入佳境)’이 되어 가고 있었다. 만일 거짓말이 탄로라도 나면, 그때는 밖으로 비친 주머니 속의 명찰을 보고 알았노라고 이실직고(以實直告)할 생각이었다. 

“선생님은 저를 잘 기억하시는데 저는 선생님을 몰라 뵈어 죄송해요.” “아냐, 괜찮아!” “선생님, 다음 정거장에서 저는 내리거든요. 혹시 저를 어떻게 아시는지 말씀해 주실 수 없으세요?” “나중에 알게 될 거야, 잘 가!” 비록 내말이 ‘하얀 거짓말(white lie)’이긴 하지만 좀 미안한 마음으로 작별인사를 하고 기회가 되면 예쁜 카드라도 보내리라 마음먹었다.

그해 연말에 학교본부에서 마련해 준 성탄카드를 쓰다가 ‘강원도 속초시 속초여자중학교 1학년 3반 백윤희’라고 쓴 카드를 보내면서 영어참고서 한 권과 몇 가지 학용품을 정성스레 포장해서 소포로 보냈다. 겨울 방학 중에 윤희에게서 답장이 왔다. 카드와 선물을 받고 너무 기뻤다는 이야기와 이번에도 “어떻게 ‘백윤희’를 아는가?”에 대한 질문을 빼놓지 않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나이 지긋한 50대의 아저씨와 막내딸 같은 여중생은 재미있는 편지를 주고받는 ‘펜팔’이 되었다. 나는 매번 윤희의 편지를 서너 차례 받고서야 답장을 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내가 편지 쓰기에 늑장을 부려서가 아니라 윤희가 너무 자주 편지를 보내왔기 때문이었다. 그 이듬해인 1993년 여름, 대전에서는 국제박람회인 「93-엑스포」가 열렸는데 속초여중학생들 단체에 끼어 윤희도 대전 행사장엘 다녀갔다. 먼 곳에 여행 온 막내딸을 만난 것처럼 10여 분간의 반가운 해후(邂逅)의 시간이 있었다. 

윤희는 그해 겨울 방학에도 자기 친구와 함께 대전을 다녀갔다. “어떻게 이름을 아느냐?”는 질문이 더 이상 없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결국 ‘비밀(?)’에 대한 ‘눈치’를 챈 듯했다. 대전에 다녀가는 윤희를 보내면서 곧 ‘중3’이 되니까 아저씨에게 편지 쓰는 것도 잠깐 멈추고 공부 열심히 해서 고등학생이 된 다음에 연락을 하도록 일러 보냈는데 그 후로는 연락이 없다. 아저씨에게 폐가 될 것을 염려한 부모님의 만류가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그후, 어언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으므로 윤희가 지금쯤 40대 후반의 숙녀가 되었을 것이다. 어려서 착하고 용모가 단정했던 윤희가 여전히 때 묻지 않고 정숙한 한 가정의 주부가 되었기를 빌어 본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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