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도의 문학산책] 뿌쉬킨의 시편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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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체 ‘농촌’의 저항정신

서울 을지로 한복판에 러시아의 대문호 알렉산드로 푸시킨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인적이 없는 마을이여, 너에게 인사를 보낸다/평온과 노동과 영감(靈感)의 은신처여, 여기서 나의 세월은 눈에 띄지 않게 흐른다./행복과 망각속에서/나는 너의 것, 나는 부도덕한 요부의 집을,/호화로운 주연(酒宴)과 환락, 미망(迷妄)을 다 버리고/떡갈나무 숲의 조용한 속삭임, 전원의 고요,/명상의 벗인 자유로운 휴식을 찾으려 왔다.//나는 너의 것, 나는 사랑한다/꽃피고 서늘한 바람이 부는 너의 어스레한 뜰을/향기로운 건초더미 쌓여 있고/관목 숲속에서 깨끗한 시냇물이 속삭이는 너의 초원을/어디를 보나 눈 앞에는 생생한 풍경뿐/푸른 물이 넘치는 넓은 두 호수에는 때때로 어부의 흰 돛단배가 떠있다/저편에는 구름이 이어지고 밭들이 고랑을 이루고 멀리 오두막들이 널려있다/축축한 강언덕을 헤매는 가축의 무리/연기를 뿜는 곡물 건조장과물방앗간의 풍차/어디를 보나 만족한 기분과 노동이 있을 뿐….//나는 여기서 허영의 속박을 벗어나/진리속에서 행복을 찾아내고 자유로운 마음으로 법을 섬기고/우매한 무리들의 불평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수줍은 기도에는관심을 가지고 대답을 해주고/부정으로 위대해진 악당이나 바보의 운명을/부러워하지 않는 것을 배우리라//세기의 예언자여, 나는 그대에게 묻노라!/엄숙한 고독속에 그대의 유쾌한 소리는 더욱 똑똑히 들린다/그것은 음울한 태만의 꿈을 쫓아 버리고 나에게 노동의 열의를 북돋운다/그리고 그대의 창조적인 사랑이 마음속에서 성숙해 온다/그러나 여기 무서운 생각이 내 마음을 어둡게 한다//꽃피는 들이나 산에서/인류의 벗은 슬프게도/끔찍한 무지의 수치(羞恥)를 보는 것이다/눈물도 외면하고/신음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고/사람을 파멸로 이끌기 위해/운명에 의해 선택된/야만적인 지주(地主)들은/무정하게 법도 없이/강제의 채찍을 휘둘러/농부의 재산과 시간을 빼앗는다/남의 쟁기 앞에 허리를 굽히고/채찍에 순종하며 말라 비틀어진 농노(農奴)는/가혹한 지주의 밭을 간다/이 농노들은 무덤에 갈때까지/무거운 멍에를 끌고/젊은 처녀들은/희망도 사랑도 품을 줄 모르며/무정한 악당의 일시적 기분을 위해 꽃을 피운다//늙어가는 아버지에 귀여운 지주/젊은 일꾼인 아들은/자기가 태어난 오두막을 떠나 지주집의 피곤한 농노의 수를 더해준다//아 아! 내 목소리가/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안다면!/왜 내 가슴에는/헛된 분노의 불길이 타고 있는가/아 아 벗이여!/황제의 뜻에 따라 농노제가 폐지되고/찬란한 조국 위에/아름다운 여명(黎明)이 떠오를 날을 볼 것인가.(이종진 역<친구여 시간이 되었다> 영언 출판사 발행)

‘시베리아에 보낸다’에 이어 ‘농촌’을 제시한 것은 뿌쉬킨이 제정 러시아에 대한 저항정신을 적나라하게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농촌’이 쓰이기 전, 러시아는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침공을 격퇴시켰다. 이 와중에 러시아 전제정치에 대한 불만이 싹트기 시작했다. 위의 두 시편은 프랑스의 침략으로 피폐화된 상황을 사실적 기법으로 다룬 것이다.(약 1천490자)

박이도 장로

<현대교회•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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