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학교에 다녀오면 으레 할머니와 말벗이 되어 주로 학급에서 보고 느낀 바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곤 했었다. 오늘은 학교에서 오자마자 친구의 흉을 보았더니 할머니는 나에게 옛날이야기 해줄까? 하시지 않는가.
나는 다소곳이 할머니 곁에 앉아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다. 그러면 잘 들어봐야 한다 하시며, “옛날 아주 먼 옛날에 어떤 나무꾼이 살았었다. 하루는 산에 나무하려고 갔다가 제 흥에 겨워 신나게 노래를 불렀지. 그랬더니 저편에서 똑같은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듣고 보니 자기 흉내를 내는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어느 놈이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높여 욕설을 퍼부었단다. 역시 똑같은 목소리로 나무꾼에게 욕설을 퍼붓는 것이 아닌가. 그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고약한 놈을 찾아내어 혼내주려고 온종일 산속을 헤매었단다. 해가 서산마루에 지자, 나무도 못하고 집에 돌아와 이 사실을 가족에게 말했더니, 어머니는 그것을 산울림이라고 일러주었단다.” 이렇게 말하시던 할머니는 다정한 음성으로 나를 부르시더니만 “어제도 친구의 흉을 보더니만 오늘도 남의 흉을 보는구나. 나무꾼이 노래하면 노래로 답하고 욕하면 욕으로 답해주듯이 네가 남의 흉을 보면 남도 너에게 싫은 소리로 답하고 흉을 보는 것이란다. 그러니 남의 잘못이나 흉을 보지 말고 남의 장점을 찾아 말해야 한단다”고 하셨다.
할머니로부터 이 말을 들은 지 며칠 후의 일이다. 그날도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인데 어느 가게 앞에서 고등학교 3학년 형이 깨끗한 옷을 입고 내 앞에 걸어오지 않는가. “형! 참 멋있네.” 스쳐가는 말로 했더니만 생긋 웃으며 “어린 것이 못하는 말이 없네. 이리 와”라며 상점으로 들어가 내게 눈깔사탕 하나를 사주며 “내가 어디가 그렇게 멋있지?” 이렇게 물으면서 여전히 빙그레 웃는다. “옷도 멋있고, 걸음걸이도 의젓하고, 얼굴도 잘생겼지 않아. 그래서 그런 말을 했지.” “정말 그렇게 보이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그 뒤부터 친형처럼 잘 따라 주고 그 형 역시 친동생처럼 아껴주었다. 그 형을 겪어보니 마음도 정말 따뜻했다.
그때부터 남을 칭찬하는 버릇이 생겼는지는 분명히 말할 수는 없지만 생각해 보니 할머니 말씀이 모두 옳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한 번 두 번 그분의 말씀대로 하다 보니 내 기분도 좋았다. 그 뒤에도 많은 세월이 흘렀다. 성경말씀 잠언 22장 6절에도 역시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을 깊이 되새겨봤다.
내가 25세 때의 일이다. 지방신문기자 시험에 합격해 업무가 주어질 때의 일이다. 그때 남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리 달갑지 않았다. 지금도 내 키가 작은 편인데 한창 성장기에도 162cm를 넘지 못한 체구였다. 더구나 내 얼굴이 남성답게 생기지 못해 앳되게 보였다. 그런데도 기자라고 행세하는 것이 못마땅하게 여겼는지 인격적으로 대접받지 못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니 언제 마음의 여유가 있었겠는가. 그 후 몇 년 뒤인 1972~1973년도 신문사 통폐합이 있을 때 공립 고등학교 교사로 전직했다. 그 뒤 대학교에도 출강했는데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칭찬이 교육의 특효약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때부터 이루어진 나의 버릇이라 여겨진다.
하재준 장로
중동교회 은퇴
수필가·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