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새파는 주전 2세기 중반 유다의 독립을 위해 일어난 마카비 운동 시대에서부터 기원합니다. 그들은 유다 마카비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마카비 집안 사람들의 열정에 감동했습니다. 그들은 마카비 집안이 예루살렘을 통치하게 되자 곧 자신들이 확신하는 바를 체제의 중심 이념으로 세우고자 노력했습니다.
하스모니아 왕국에서 박해를 받기도 하고 다메섹으로 피신하기도 하는 어려움을 겪으면서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정치 종교적 열정과 이념을 확고하게 했습니다.그러나 그들의 시도는 로마가 세상 권세를 쥐고 사두개인들이 예루살렘 정치 활동 중심에 서면서, 그리고 에세네파가 예루살렘을 멀리하는 분파주의적 활동으로 나타나면서 독단으로 예루살렘 통치이념의 주체가 될 수 없었습니다. 결국 바리새인들은 예루살렘을 그 활동의 중심지로 포기하지 않으면서 그 권력적 행태와는 거리를 두는 방식으로 자기들만의 열심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일반 대중들에게 율법에 관해 정통한 그들만의 해석을 제공하면서 그것을 예루살렘과 유다, 갈릴리의 유대인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여러 회당을 기반으로 그들의 ‘구별된’ 가르침을 이어갔습니다(마 23:2). 힐렐과 샴마이는 가장 대표적인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가말리엘은 힐렐의 사람으로 매우 존경받는 선생이었 습니다(행 5:34-39).
예수님께서 과도한 율법주의적 태도 때문에, 그리고 권위에 대한 무의미한 집착 때문에 바리새인들을 비판하신 것은 사실입니다(마 16:12, 막 8:15).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누구보다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었음이 분명합니다.
바울은 다소에서 예루살렘으로 와서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모세의 율법 해석과 신앙의 전통을 배웠습니다. 그는 바리새파 안에서 열정을 진지하게 탐구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렇게 그의 특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배우는 일에도 이어졌습니다.
바울에게 하나님을 향한 열정은 그의 평생에 중요한 자원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의 바리새인이었을 때 그가 몰랐던 것은 그 열심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것이어야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열심에는 올바른 방향과 끝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강신덕 목사
<토비아선교회, 샬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