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구경하러 가면 안 될까?”하고 갑자기 아내가 말했다. 나는 놀라서 되물었다. “왜 그런 생각을?” 아내는 이 몇 달간 아파트의 꽉 막힌 공간에 처박혀 밖에 나가기를 싫어했다. 워커에 의지해서 방안에서 움직일 뿐이어서 신선한 공기를 쐬러 휠체어를 타고서라도 밖을 나가보지 않겠느냐고 권해도 꿈쩍도 안 하던 터였다. “일기 예보에 곧 비가 온다는 데 동학사의 벚꽃이 다 질 것 같아 그래요.” 차 안에 앉아 벚꽃길을 한 바퀴 돌아보자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것도 고마워서 동학사 안내소에 꽃이 어느 정도 피었는지 알아보고 곧 채비했다.
아내는 고난 주간인데 교회는 안 나가면서 꽃 구경 간다는 것이 좀 께름칙하다고 말했다. 교회는 차로 50분 거리이고 동학사는 20분 거리이며 꽃 구경은 밖에서 걷는 일이 없어서 하나님도 우리 사정을 아시고 용서하실 거라고 말했다. 얼마 전 결혼 66주년 기념일에도 아무 일도 해주지 못해서 미안했던 터였다. 밖으로 나와 신선한 공기를 쏘이니 기분이 산뜻해졌다. 교회는 나이가 들고 신체적으로 불편해지면서 비대면 예배를 드리고 또 이 오순절 기간에는 교회가 정한 ‘공동체 성경 읽기’를 열심히 하고 있어서 교회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소속감을 잃지 않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는 터였다.
아내는 밖으로 나오자 성경 읽기에서 요한복음 13장의 예수님께서 발 씻어주는 구절 이야기를 나에게 물었다. 베드로가 예수께 절대로 자기 발을 씻어줄 수 없다고 말했을 때 주께서 왜 발을 씻어주지 않으면 주님과 베드로는 상관이 없어진다고 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주께서 세상을 떠나시기 전 제자들의 발을 씻겨 준 건, 제자들이 이 세상에 묻혀 걷는 동안 오염된 발을 씻어주지 않으면 결국 천국에 가 있을 주님과 함께 지낼 수 없다는 뜻이 아닐까?”라고 말해 주었다. “오염된 것들이 무엇인데?”, “세상 사람들이 구하는 물질, 권력, 명예욕, 음행과 탐욕 뭐 그런 것들 아니겠어?”
그러면서 트럼프가 집권하고 백악관에서 하워드 러트니 미 상무장관 취임식 때 그곳에 참석한 그의 아들 카일을 찾아 러트니 장관이 그 애가 어려서 5살 때 그를 유치원에 데려다주느라 2001년 9‧11 테러로 세계무역센터에 출근하지 못해 러트니 장관이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일화를 청중에게 말하며 그 애는 다른 자식보다 ‘유산을 더 주어야 할 것’이라는 말을 했다는 신문 칼럼을 보았는데 나는 세족(洗足)을 안 한 것 같은 트럼프가 주와 함께하는 기독교인일까 하고 생각한 일도 있다고 말했다.
“요즘 정치인들은 다 그런 게 아니에요?”, “글쎄 정치는 하늘나라에서 하는 것이 아니고 이 세상에서 하는 것이니까.”, “그럼 주님으로부터 진정 세족해 받은 교인들은 세상 정치인은 될 수 없나요?”, “미국의 흑인 목사 마틴 루터 킹 같은 분은 정치인은 아니었지만, 워싱턴 DC에서 열린 ‘시민 참여 직업과 자유를 위한 워싱턴 행진’에서 유명한 연설을 했지요.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조지아주의 붉은 언덕에서 노예의 후손들과 노예 주인의 후손들이 형제처럼 손을 잡고 나란히 앉게 되는 꿈입니다’라고 링컨 기념관 앞에서 연설했는데 꿈은 세상의 가치관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즉, ‘발 씻음을 받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꿈인데 미국 정치사에 노예해방을 가져왔잖아요?”, “우리나라도 6월 3일 새 대통령을 뽑는다는데 80년 만에 이룩한 대한민국의 영광을 되찾는 지도자를 우리 국민이 뽑을 영안(靈眼)을 가질 수 있을까요?”, “우리처럼 세상을 다 산 사람이 무슨 일을 할 수 있으며 무슨 큰 일을 할 수 있겠어요. 하나님께 기도할 뿐이지요. 제왕 정치를 하는 ‘왕 같은 대통령을 뽑지 않게 해주세요. 세상의 욕심이 아니라 천국에 더 큰 꿈을 가진 대통령을 뽑게 해주세요’하고 기도해야지요. 유권자들이 바르게 투표권을 행사해 달라고 기도할 뿐이지요.”, “토요일마다 KBS에서 방영하는 ‘동네 한 바퀴’를 보고 있으면 따뜻하고 유쾌한 삶, 동네 사람들의 진솔한 삶을 많이 보는데 꿈이 있는 그런 사람들은 투쟁과 쟁취만 외치지 않을 것 같아요.”
우리는 어느새 동학사의 꽃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동학사 입구에서 한 바퀴 돌면 30분, 역으로 반대편에서 동학사 입구 쪽으로 돌면 15분 정도다. 벚꽃이 많이 고목이 되었다. 그러나 적절한 비와 햇볕으로 꽃봉오리가 맺히고 이내 활짝 피어 하나님의 솜씨를 뽐내주는 것은 너무 신기하고 감사하다. 비가 오면 꽃잎이 져도 초록색 이파리를 내며 기후에 순응한다. 우리는 말 없이 하나님의 작품을 감상하며 꽃길을 달렸다. 젊어서는 군산가도, 속리산, 구례 쌍계사, 경주 등 벚꽃을 찾아 마음대로 다녔으나 지금은 차 안에 묶여서 감상만 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솜씨에 감격하며 말없이 달렸다.
집에 돌아오니 얼마 동안 마음이 상쾌하였다. 그러나 뉴스를 듣고 있으니 다시 마음이 답답해졌다. 여당과 야당은 ‘너 죽고 나 살자’의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의 “내가 주와 또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는 것이 옳으니라(요 13:14)”라는 말씀이 머리에 떠올랐는데 이 혼란 속에 하나님의 말씀은 정치인들에게는 어린애들에게 들려주는 동화만큼도 감동을 줄 수 없는 말씀이었다.
오승재 장로
<오정교회,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