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장기려 박사(1911-1995)는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한다. 장기려 박사는 일제 강점기에 서울의대 전신 경성의전을 졸업하고 30세에 평양 기독병원 외과과장을 거쳐 병원장을 지냈다. 1945년 해방되면서 김일성대학 교수로 잠시 있으면서 영어원서를 가르칠 만큼 영어실력이 뛰어났다.
그는 1950년 6.25때 차남을 데리고 월남했는데 아내와 다른 자녀들과 생이별을 했다. 그래서 항상 이북에 두고 온 아내와 자녀를 그리워하면서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했으며 돈과 권위주의를 떠나서 순수하게 의료인으로 성실하게 살았다. 부산에서 복음병원과 청십자병원을 세워 피난민과 가난한 환자를 무료로 치료해 주었다.
장기려 박사는 병원의 목적은 환자의 병을 치료하는 것이라고 하며 치료비를 전혀 받지 않았다. 아들 장기용 박사는 서울의대 교수로 사랑의 장기기증운동 본부장이며, 손자 장여구 박사는 인제대 서울백병원 교수로 있다. 그는 부산에서 청십자의원을 설립하고 의료보험제도보다 앞서서 ‘청십자 의료보험’ 제도를 실시했다.
어느 날 장기려 박사의 집에 도둑이 들어왔다. 도둑은 가지고 갈 만한 물건이 없어 두리번거리다가 책을 가지고 가려고 주섬주섬 거리며 책을 챙겼다. 이때 장기려 박사는 그 책은 돈 되는 것이 못되니 책 대신 돈을 주겠다고 하며 돈을 주어 도둑은 돈을 가지고 나갔다. 장기려 박사는 믿음이 진실해 사람들이 ‘작은 예수’라고 불렀다. 의사 장기려 박사는 거지, 행려병자, 간질환자들을 먼저 섬기며 치료해 준 우리시대의 의인(義人)이며 선자(聖者)였다. 자기 집에 구걸하려고 온 걸인과 한 상에서 식사를 겸상해 먹었으며 걸인에게 자기가 입던 외투를 벗어주었다.
어느 날 장기려 박사가 길을 가다가 거리에서 거지를 만나 거지가 돈을 요구했는데 돈이 없었다. 그래서 장기려 박사는 월급으로 받은 주머니의 수표를 거지에게 몽땅 주면서 사용하라고 했다.
김광식 목사<인천제삼교회 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