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어느 작은 수퍼마켓에서 갑작스런 ‘정전(停電)’으로 불이 꺼졌습니다. 그런데 그 수퍼마켓이 지하에 있었기 때문에, 주위가 칠흑같이 어두워졌습니다. 더 큰 문제는 계산기가 작동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언제 다시 전기가 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인지라, 어둠 속에서 계산을 기다리던 손님들이 웅성대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수퍼마켓 직원이 이렇게 안내방송을 했습니다. “정전으로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전기가 언제 들어올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니, 바구니에 담은 물건은 그냥 집으로 가져가십시오. 그리고 그 값은 여러분이 원하는 자선(慈善) 단체에 기부해 주십시오. 모두 안전하게 나갈 수 있도록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조심해서 저를 따라 오십시오.”
이 사건이 언론을 통해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손님의 안전을 먼저 생각한 수퍼마켓 직원의 조치에 대해 칭찬이 잇따랐습니다. 얼마 뒤, 수퍼마켓 본사의 감사팀이 그곳으로 조사차 나왔습니다. 그날 나간 상품 금액은 대략 4천 달러(한화 520만 원)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일주일간 언론에 노출된 회사의 긍정적인 이미지로 인해서 얻은 광고효과는 4천 달러의 100배인 40만 달러(한화 5억 2천만 원)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많은 것을 얻고자 욕심을 부려서 더 많은걸 잃게 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반면에 기꺼이 손해를 감수하고 선한 일을 해서 더 많은 걸 얻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에도 후자(後者)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속담에 좋지 않은 뜻을 지닌 말이 있습니다. “지름길로 가야 한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꿩 잡는 것이 매다”하는 속담들입니다. 이 말들은 모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목적만 성취하면 된다는 뜻으로, 부정과 부패를 부추기는 잘못된 속담들입니다. 신앙인의 길에는 지름길은 없으며 모로 걸어가서도 안 되고 반드시 정도(正道)로 가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정도’의 길은 ‘순리(順理)’를 따르는 길입니다. 어떤 일이라도 ‘순리’를 따라가면 평안하고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정도의 길’은 상식에 어긋나지 않는 길이고, ‘덕스러운 길’이기도 합니다.
한자에 《법 법(法)》자가 있습니다. ‘물 수(氵)변’에 ‘갈 거(去)’가 합쳐진 글자입니다. 이것을 한 줄로 꿰어 보면 ‘법(法)’이란 곧 “물 흘러가는 대로 따라가는 것, 곧 ‘순리’대로 살아가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순리’대로 살아가는 것이 ‘정도’로 걸어가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성경은 성도가 살아가야 할 ‘신앙의 정도’를 언급하면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말씀을 지켜 행하라”고 했습니다. 정도의 길, 곧 신앙의 길은 좌로도 치우치지 않고, 우로도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 말씀 중심의 길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말씀 중심’의 길은 범사에 ‘하나님의 말씀’을 내 ‘인생길의 지표(指標)’로 삼고 살아가는 ‘믿음의 길’입니다.
어떤 사람이 무엇을 말하며 무엇을 생각하며 사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인격과 행동에 아주 밀접한 관계를 지닙니다. 날마다 돈을 말하며 돈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물질 중심의 사람’이 될 것이며 날마다 ‘하나님’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고 살면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스라엘 백성의 긴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에 바로 서서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않고 살았을 때, 저들이 받은 ‘축복’과 또 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을 때, 받은 ‘고난과 징계’를 우리에게 보여 주시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한자 성어에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의 네 글자는 주머니 낭(囊), 가운데 중(中), 갈지(之), 송곳 추(錐)이니 한 줄로 꿰어 놓으면 “주머니 속의 송곳”이라는 뜻이 됩니다. ‘뾰족한 송곳’은 가만히 있어도 반드시 뚫고 나오듯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은 남의 눈에 띄게 됨”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여기서 다시 생각해 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가 어느 곳에 있든지,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시대에 편승하지 않고 사회적 통념 속에 함몰(陷沒)되지 않는 사람, 즉 동시대를 살아가지만 ‘정도’로 걸어서 가는 사람, 곧 믿지 않는 사람이 지니지 못한 ‘기쁨과 평강을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