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시각장애인선교의 첫발을 내딛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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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회관 807호 문간에서 반쪽 책상을 놓고 시작한 시각장애인선교는 날이 갈수록 조금씩 확장되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총회에 찾아오시는 목사님들을 정성껏 대접했고 진심으로 모셨다. 뜻 있는 목사님들의 후원으로 사무실의 면모도 새롭게 갖추어지고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총회 전도부 내에서도 모두가 나를 격려하고 도와주기 시작했다. 6개월 후에는 비서도 한 사람 채용할 수 있었다. 교회를 열심히 방문하고 각 교회에서 ‘시각장애인선교의 밤’을 열면서 총회 전도부 안에 시각장애인선교 후원회도 조직하게 되었다. 초대 회장은 고인이 되신 한기원 목사님께서 맡아 주셨다. 각 노회 여러 임원들의 협력으로 후원회는 더 많은 활동을 전개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목사님이 되신 예능교회 곽규석 집사님과 선명회 합창단과 함께 세종문화회관에서 자선음악회를 개최해 성황을 이룬 적도 있었다. 또한 뮤지컬 공연도 가졌는데, 그 집회 역시 대성황을 이루었다. 한국 교회가 시각장애인선교의 장래를 위해 적극적으로 지원해 줄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겨났다.

또 한 번은 영락교회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특별 집회를 3일 동안 성황리에 열 수 있었다. 이로 인해 4년 동안에 걸친 시각장애인선교 활동은 완전히 기초가 다져지게 되었다. 

개안 수술의 기폭제가 된 오병이어

시각장애인선교 활동은 주로 선교대회나 바자회, 음악회, 특별 집회를 중심으로 한 선교 캠페인이 주종을 이루었다. 또한 장학기금 모금과 점자 성경과 찬송을 각 교회와 시각장애인학교에 보급하는 일도 중요한 사업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로 하여금 직접 시각장애인을 눈뜨게 하는 의료사역을 할 수 있도록 치료의 문을 활짝 열어 주시는 놀라운 전기를 만들어 주셨다.

1977년 시각장애인 전도부에 귀한 손님이 찾아오셨다. 평소에 안면이 있는 충북대학교 가정대학의 이정순 교수님이 나의 동역자 박기철 목사와 함께 온 것이다. 이 교수는 핸드백에서 돈 봉투를 꺼내 내게 불쑥 내밀면서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 시각장애인의 눈을 뜨게 해주고 싶습니다. 이것은 아들 결혼시키려고 모아 둔 비용인데 개안 수술비로 써 주셨으면 합니다.”

그때 나의 가슴은 뜨거운 감동이 밀려와 전율을 느꼈다. 나는 이 교수의 손을 꼭잡고 뜨거운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이 교수는 남편이 납북되는 바람에 홀로 외아들을 키우며 살았는데, 그 외아들 결혼 비용으로 적금 든 돈 450만 원을 가져온 것이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시각장애인을 위한 개안 수술은 구체적인 대안이 준비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분이 구체적인 안을 제시해 준 일이 의료선교 사역의 출발점이 된 것이다. 20만 시각장애인과 500만 저시력자들을 위한 의료사역이 이 교수의 특별헌금으로 시작된 것이다.

의료선교에 헌금한 사연은 이러했다. 이정순 교수가 어느 날 청주에 있는 시각장애인학교를 방문하게 되었다. 시각장애 학생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중 학생들의 눈을 자세히 관찰해 보니 눈동자에 흰 막 같은 것이 덮여져 있었다. 이 교수는 ‘누가 저 흰 것만 제거해 준다면 밝게 볼 수 있을 텐데’ 하는 확신과 안타까운 마음이 불같이 일어났다고 한다.

나는 이정순 교수의 귀중한 헌금을 받은 즉시 친분이 있는 몇 분의 안과 전문의들을 만났다. 시각장애인이 개안 수술을 통해 시력을 찾을 수 있느냐고 물으니 비용이 문제이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드디어 이정순 교수가 바친 개안 수술 기금으로 첫 번째 개안 수술이 시작되었다. 우리들은 한 형제를 수술대에 눕혀 놓고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눈먼 자들의 눈을 뜨게 하시고 잃었던 세상을 다시 바라볼 수 있도록 치료하시는 하나님. 오늘 우리들이 하나님의 사역을 따라서 첫 번째 개안 수술을 하려고 합니다. 긍휼히 여기시고 치료의 빛을 임하게 해 주옵소서. 집도하는 종들의 손을 붙들어 주시며 저들의 하는 일이 하나님께 영광 돌려 드리는 거룩한 사역이 되도록 하옵소서.”

첫 개안 수술 성공

첫 번째 수술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수술 받은 형제는 며칠 있지 않아서 시력을 회복해 사물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에 큰 감동을 받은 시각장애인선교회는 시각장애인의 개안 수술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기 위한 전략을 다각도로 수립하기에 이르렀다. 당시만 해도 개안 수술의 의미를 잘 모를 때여서 나는 교회를 중심으로 홍보 영역을 넓혀 나갔다.

첫 번째 수술에 성공한 후 몇몇 안과 의사들과 병원의 도움, 뜻 있는 후원자들의 헌금으로 개안 수술은 서서히 진행되었다. 이러한 뉴스는 우선 교계 신문들을 통해 전국으로 소개되었다.

김선태 목사

<실로암안과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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