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지혜] 만수 김정준 박사

Google+ LinkedIn Katalk +

만수 김정준 목사는 1914년 부산에서 태어나 일본 청산학원, 캐나다 토론토 대학원과 영국 에든버러 대학에서 공부했다. 귀국 후에는 한국신학대학(현 한신대) 학장을 역임하며 학문과 신앙의 길을 걸었다. 김정준은 1943년 32세의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마산결핵요양소에 입소하게 되었는데, 제6급 환자 병실에서 치료를 받았다. 그곳은 ‘공동묘지’로 불릴 만큼 중증 환자들이 모여 있는 절망적인 공간이었다. 3개월의 시한부 선고를 받은 그는, 자신의 고통 속에서도 주변 병자들을 돌보며 간호하고 기도했다. 그러던 중 병이 회복되는 기적을 경험하며 퇴원하게 되었다. 

김정준은 당시 3개월밖에 살 수 없다는 의사의 선고를 받고 병실 침대에 누워 죽을 날짜만 세고 있었다. 그런데 같은 병실의 순이라는 여자아이가 자기보다 더 힘든 고통 속에서 밤마다 절규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여자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었다. 병원에는 치료의 손이 모자랐고, 병실의 다른 환자들은 수면을 방해하는 순이의 비명 소리를 증오하며 어서 죽기를 바랐다. 

김정준은 이 죽음에 직면한 아이를 돌아볼 사람은 자기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그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그 아이에게 다가가서 기도하고 위로해 주며 병시중을 들었다. 그러면서 그 아이의 딱한 과거사를 들을 수 있었다. 아주 어릴 때 고아가 되어 이집 저집 식모살이를 해 온 순이는 그의 병이 발견되었을 때 주인집에서 쫓겨났다. 5년간 섬겨온 그 주인은 무작정하고 문밖으로 내쫓아 버렸다는 것이다. 얼마 동안 문전걸식을 한 후, 순이는 거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파출소 순경의 도움으로 마산 시청의 행정절차를 거쳐, 이 국립요양소로 옮겨오게 되었다고 한다. 순이는 어릴 때 동무들과 함께 주일학교 다닌 것을 가장 아름다운 기억으로 자랑했다. 그러면서 김정준이 들려주는 예수님 이야기와 하나님의 말씀을 흥미 있게 듣곤 했다. 김정준은 소녀의 주일학교 선생이 된 느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순이는 어느 날 밤중에 소리 없이 세상을 떠났다. 그때 김정준은 가슴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인간적인 동정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후 김정준은 다른 환자들도 힘닿는 데까지 열심히 돌아보고 기도해 주고 친구가 되어주었는데, 그 과정에서 신기하게 그의 폐결핵이 완치되었다. 그는 고난 속에서도 주님의 일을 했고, 주님은 그의 병을 고쳐주셔서 더 큰 일을 맡기셨다. 

문성모 목사

<전 서울장신대 총장•한국찬송가개발원장>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