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광장] 링컨의 포용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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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5월 18일 시카고에서는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를 선출하는 전당대회가 열렸다. 대선 예비후보 중에서 윌리엄 슈어드, 새먼 체이스, 에드워드 베이츠는 모두 상원의원과 주지사를 역임한 유명 정치인들이었던 반면, 에이브러햄 링컨은 전국 수준의 정치 경험이라곤 하원의원을 한 번 역임하고 두 번의 상원의원 선거에서 연속 낙선한 시골 변호사에 불과했다. 이들 중 슈어드가 처음부터 압도적인 우세를 보이며 선두를 달렸고, 체이스와 베이츠가 그 뒤를 따르고 있었으며, 링컨이 지명될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전당대회 기간에 모인 각 주의 대표들이 난상 토론 후 투표로 후보를 결정하는 의외성 많은 당시의 상황에서도 슈어드의 승리는 너무나 확실해 보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1차 투표에서 슈어드 173.5표, 링컨 102표, 체이스 49표, 베이츠 48표라는 의외의 결과가 나오면서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었다. 2차 투표에서 슈어드 184.5표, 링컨 181표로 박빙이 되자 링컨 지지를 외치는 함성이 터져 나왔고 결국 만장일치로 링컨을 추대하는 놀라운 반전이 일어났다. 미국 정치 역사상 전무후무한 역전 드라마를 쓴 것이다. 

결국 링컨은 그해 11월 대선에서 당선되어 노예해방을 이루고 미국의 민주주의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탁월한 정치력과 설득력 있는 웅변 능력, 그리고 지적으로 도덕적으로 탁월한 자질이 있었지만, 특별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경쟁자들을 포용하고 그들의 마음을 얻어 협력을 이끌어내는 포용의 리더십이다.

링컨은 초대 내각에 자신의 정치적인 경쟁자들을 모두 끌어들이는, 상상을 초월한 포용의 정치력을 발휘한다. 그는 슈어드를 국무장관, 체이스를 재무장관, 베이츠를 법무장관에 각각 임명하고, 상대 당인 민주당 출신의 인물에게도 해군장관, 우정장관, 전쟁장관을 제안할 정도였다. 링컨의 내각은 모두 링컨보다 더 유명하고 더 학벌 좋고 공직경력이 화려한 사람들로 구성되었으므로 이들 틈에서 스프링필드 출신의 무명 변호사는 빛을 잃고, 자칫하면 존재감 없는 명목상의 대통령으로 전락할 수도 있었다. 실제로 그들은 처음에 링컨이 경험도 없고 무식하다고 경멸하고 협조하기를 꺼렸다고 한다. 

링컨의 뛰어난 능력을 가장 먼저 알아챈 것은 가장 강력한 경쟁자였던 국무장관 슈어드였다. 그는 임명된 지 몇 개월 지나지 않아 곧 링컨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조력자가 되었다. 베이츠 역시 처음에는 링컨이 착하기는 해도 무능한 행정가라고 생각했지만 결국에는 누구도 비교할 수 없는 완벽한 인물이라고 평가하기까지 했다. 대통령직에 대한 야망이 가득한 체이스조차도 후일에는 링컨이 자신보다 더 뛰어난 인물이라고 인정했다고 한다. 권력욕이 컸던 체이스는 링컨에게 사사건건 불만을 토로하고 그를 깎아내리려는 인물이었다. 이를 보다 못한 링컨의 친구들은 그를 파면하라고 조언했지만, 링컨은 웃으면서 자신은 체이스에게 항상 감사하고 있으며 그를 쫓아낼 생각이 전혀 없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링컨은 자신보다 뛰어난 경쟁자들의 능력을 인정하고 그들을 오히려 친구로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힘을 합해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할 수 있었다. 지금 우리나라는 정치적으로 분열되어 서로를 적으로 만들 뿐만 아니라, 자기편 안에서도 서로 갈라치기를 하며 사분오열되고 있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링컨이 보여준 참된 겸손함과 경쟁자조차도 감싸 안는 포용의 리더십이 아닌가 한다. 

김완진 장로

• 소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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