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회복]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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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은 구원을 이루어 나갈 때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고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지위와 신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나며” 참 신앙은 단순한 외적 순종이 아니라 즐거움으로 순종하는 것이다. 최근의 자유주의 신학의 주장은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주장을 함으로써 기독교의 핵심적 교리를 혼란스럽게 흔들고 있다. 만인(萬人) 구원설까지 주장한다. 그러다 보니 신앙을 특별히 가질 필요가 없다는 주장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신앙을 서로 선(善)하게 살라는 일반적인 호소로 전락시키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창조하시고”의 말씀을 들어 ‘하나님의 보편적인 인류의  아버지되심’을 주장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外人)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였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養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입양(入養)해 주시고 자녀로 삼아 주신 것이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신(神)의 성품에 참여한 자가 되었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종으로부터 자유를 얻은 자들이 되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아바! 아버지’라는 부름으로 자녀가 된 기쁨과 감사를 표현한다.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서의 특징은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는 것이다. ‘모든 일’은 구원과 관계되는 일이다. 하나님은 열국(列國) 중에서 경멸받던 유목민 이스라엘을 택하셨다. 그들은 애굽 노예의 삶에서 해방되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자기 장막(帳幕)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다투는 상황이 되었다. 그들은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자고까지 했다. 애굽의 부추와 마늘을 그리워했다. 

 광야 40년의 삶은 위대한 순례의 여정(旅程)이다. 세상을 떠나 하나님의 영역으로 옮겨가는 영적 순례길이었다. 고난의 광야 길이었다. 

 하나님께서 옛날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인도하셨듯이 우리를 인도하고 계신다. 우리 안에 자기의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의 악(惡)한 본을 따라 하나님을 원망, 불평하는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우리는 순례의 길을 걷는 동안 매우 조심해야 하겠다. 우리의 여정(旅程)에는 마실 물이 한 방울도 없는 듯 느껴질 때가 있고, 먹을 만한 음식이 없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에도 원망과 시비가 없는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서의 태도를 견지(堅持)해야 하겠다. 그리스도인이 가장 먼저 범하는 잘못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는 것이다. 원망은 주님을 향한 사랑이 부족하다는 표지(標識)이다.

 원망, 시비, 불평, 불만은 믿음에 문제가 생기게 하고,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잃으면 어떤 것도 믿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하면 아무 것도 두렵지 않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선하심이 평생 나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둘러 진(陳)쳐 주신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영적 유익과 선(善)을 위해 어려움을 주시고 병들게도 하신다.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라면 무슨 일이 일어나도 개의(介意)치 않아야 옳다. 원망과 불평을 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시라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인생의 모든 무거운 짐은 하나님의 손에 맡겨드릴 수 있어야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가 될 수 있다. 끝까지 주님의 사랑을 믿고 의지하는 믿음의 성도여! 하나님께 영광!

김용관 장로

<광주신안교회·한국장로문인협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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