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여정] 국사봉, 어린 시절의 추억과 미래의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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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릴 때 소싯적 시절 여름이면 집 앞 우물터 조금 건너 실개천에서 멱 감고 다슬기와 작은 물고기 잡기로 하루해를 보냈다. 때로는 그물망을 만들어 메뚜기 잡기와 무늬 고운 나비들, 그리고 식물 채집의 숙제로 온 동네방네로 또래들과 어울려 다니며 어린 시절을 보냈었다. 

어쩌다 마을 근처의 당산나무 정자 근처에 가면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노인분들이 모여 앉아 부채들을 한가로이 부치며 근엄하게 장기나 바둑을 두는 모습들이 신기하게만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가끔 마을의 젊은 아주머니들이 먹거리로 가져온 듯싶은 계절에 따른 과일이나 식혜를 드시며 담소하시는 걸 자주 목격하곤 했다.

이럴 때면 꼭 빠지지 않는 말씀 중에 동리에서 산너머 능선구비로 굳게 솟은 노령산맥의 국사봉 얘기였다. 마을 앞 나무들 사이사이로 묏봉우리 몇 개 건너 저 멀리 우람하게 솟은 국사봉은 그 위용이 마치 근처의 모든 산들을 포용하듯 위압이 있었으며 주변의 풍광과 어울려 신비스런 비경 그 자체였다.

또한 산세가 맑고 유려했으며 위치한 자리가 근처의 봉우리들과는 확연히 다르게 마치 웅비하는 학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가끔 산안개나 구름들이 국사봉을 지나거나 칠부 능선 근처에서 머물 때면 마치 그 풍경과 산세가 한데 어우러져 하늘나라에라도 온 듯 신비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어른들은 지리풍수설을 들먹이며 그 산세의 경계에 따라 큰 인물이 많이 난다는 전설이나 설화들을 그럴 듯하게 들먹이는 것을 우리는 마치 어렵고 거룩한 말씀을 듣듯 조용히 경청하곤 했다. 그 국사봉 아랫마을에서 이씨조선의 명제상인 보은 출신의 홍윤성이 태어났다며 일견 모든 사람들이 우러르는 정신 안에 우리들도 어깨가 으쓱해졌다.

그리고 근처의 여러 한옥 마을과 서당들이 경관 좋고 풍치 좋은 곳에 저마다 자리하며 고명한 근처의 훈장들을 모시고 운영하고 있었으니, 보은뿐만 아니라 먼 지방까지 그 소문이 자자해 학문하는 마을로 명성을 얻고 있었다. 내가 태어난 곳은 더욱 물 좋고 산 좋고 맑은 공기로 유명한 충청도 양반고을이었다.

어릴 때부터 하도 국사봉에 대한 전설들을 그럴듯하게 어른들로부터 많이 들어서인지 늘 신비한 그 어떤 하늘이 주신 동화나라처럼 별천지로 감히 우러를 수 없는 영험한 지역으로 우리들 마음속에 자리잡게 되었다.

자라서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되어서도 멀리 국사봉을 바라볼 때면 그 어떤 범접하지 못할 위엄을 갖고 있는 관계로 자연히 옷깃을 여미게 되었다. 주위의 능선을 내려다보는 당당한 위용이 참으로 장엄했다.

우리 마을이나 화남면을 비롯한 보은에서는 그 정기와 빼어난 산세의 기(氣)를 받아 홍윤성 이외의 또 다른 인물이 태어날 것이란 기대로 모두들 술렁이며 숨을 죽이고 있었다. 어린 우리들도 하나의 관심사로 자연히 어깨가 으쓱해지며 고향에 대한 자부심이 더해갔다.

할아버지들의 쉼터인 당산나무 아래에는 늘 간단한 제수음식을 장만하고 치성을 드리는 사람들의 행렬이 연중 끊이질 않았다.

그리고 마을사람들의 얘기로는 국사봉 오름새 근처의 나무들에는 수십 개의 성황당들이 저마다 안착하고 있었으며, 길목 좋은 길마다 건강과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는 뜻에서 정성을 모아 공들인 돌무덤들이 웬만한 동산의 높이만큼 여기저기 쌓여 있다고들 했다. 또한 새벽 깊은 밤이면 어디선가 강렬한 목소리로 이 세상을 향해 훈계하는 목소리가 우렁차다는 것이었다.

그뿐인가, 틈사이 길로 수령 깊은 커다란 나무들이 밀집한 곳이나 암벽 근처에서는 정신을 수양하거나 나름대로 도(道)를 닦는 사람들이 어김없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여하튼 모든 마을의 어른들이 한결같이 섬기고 어려워하는 신적인 영역으로 대접받는 국사봉은 예로부터 그 일대의 정기와 영험을 체험하고 기를 얻으려는 성리학을 공부하는 선비들이나 무속인들이 사철 끊이지 않은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국사봉을 중심으로 한 보은 일대에 수많은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태어나서 나름대로 정계와 학계, 관계에 이름을 남기고 소멸했지만, 예전부터 일치된 정신적인 마음으로 추앙받는 그 누구나 인정하는 당대의 인물은 후세의 보은의 지킴이와 토박이들, 그리고 국사봉의 유래를 아는 분들의 마음 안에서 표출되리라 본다.

여담으로 좀은 국사봉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중 한분으로 지금의 유엔사무총장인 반기문 씨를 거론하기도 하고, 수많은 보은의 인물 중 2014년도 한국 현대인물 열전의 33인에 수록된 아직도 많이 부족한 나를 거론하기도 해 몸둘 바를 모를 정도로 송구스러울 따름이다. 이는 내가 명시적으로 거론한 것도 아니고 지금도 보은지방에 가면 일부 유지들이나 일부 씨족사회를 배경으로 오래된 문중의 토박이나 어른들께서 그래도 정계나 기업계 문화계를 두루 섭력한 나의 이름도 오르내린다는 것을 겸손히 말할 뿐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동양문화 중 지리풍수설은 늘 일부에서는 세월과 시대, 그리고 종교나 연대를 초월해 그 명맥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먼 후제 이 국사봉을 보며 자란 후대의 사람들 중 어느 누가 과연 홍윤성 재상같이 추앙받았는가는 두고볼 일이다. 아니 어쩌면 지금도 근처에서 혹은 나의 향리부근에서 탄생하고 자리하며 한 시절을 보낸 인물들 중 어느 누군가가 그 이름에 걸맞은 역사적 인물로 태동되고 있는 줄도 모를 일이 아닌가.

양한석 장로

• 문현중앙교회

• 시인 

•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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