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경영] 가정의 달을 보내면서 씁쓸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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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이란? 가장 작은 단위의 사회로 사랑을 퍼올리는 우물이요, 행복의 보금자리다.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요, 애증이 교차되는 원초적 공간이기도 하다. 가족은 혈연, 인연, 입양 등 사랑으로 연결된 친족집단이다.

가족을 사랑하는 것처럼 고결하고 순결한 사랑은 없다. 사랑이 결여된 가정은 가정이 아니다. 인간은 사랑과 감성을 먹고 사는 존재다. 그런데 근자에는 그런 사랑이 희박해지고 있다. 소속감이나 유대감도 느슨해지고 있다. 정상적 가정이라면 끈끈한 사랑으로 연결된 어른들이 있고 부모자식도 있어야 한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가족이라 생각하느냐는 설문을 몇 년 전 청소년들한테 물어본 조사통계가 있다. 23.4%의 청소년들만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4분의 3의 청소년들은 할머니, 할아버지는 가족이 아니라는 것이다. 조부모님을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는 비율이 10년 전에 비해 10여 배 늘어났다. 그에 반해 기르는 애완동물을 가족이라고 대답한 것은 무려 57%에 이른다. 집안의 어른이 기르는 강아지만도 못한 것인가? 강아지한테 베푸는 관심과 사랑과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고 먹여주고 카트에 태워주고 산보 시키고 그럴 일에 10분의 1만 해보면 민족의 효자라는 말을 들을 것이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가족이 아니고 가까운 친족일 뿐이다. 하긴 식구가 아니고 시대가 변했고 세대의 차이라고 하지만 문화가 변해도 너무 변했다. 그러나 핵가족화와 개인주의 문화 속에서 어른들은 이것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것이 노년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좋다. 가정은 안식처요 피난처요 충전소이다.

지체장애와 자폐증환자 자녀를 두고 힘들게 살았던 노벨상 수상자인 대지의 작가 펄벅은 말했다. “가족은 나에게 자양분을 공급하고 있는 대지와 같다. 나는 그 가족으로부터 영양소를 취하고 있다”고. 너무도 힘들면 때로는 남몰래 슬쩍 내다버리고 싶은 게 가족이지만 그래도 가족이 있기에 일하는 보람이 있고 살맛이 나는 것이다. 죽이도록 밉다가도 자고나면 좋아지는게 가족이다. 위기 앞서 가족을 찾고 부르게 된다. 9·11테러 사건 때 추락하고 있는 비행기 속에서 죽음이 스멀스멀 다가오고 있는 불길한 순간, 불안하고 다급한 순간 찾는 곳은 직장이 아니었다. 하나같이 아내를 찾았고, 남편이고 가족이었다.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가정을 찾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도 끈끈한 가정이 해체되어 가고 있다. 가정 해체로 인해 사회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천문학적 금액이다. 그 비용은 수십조 원에 이른다. 저출산, 비혼, 세대단절, 고령화 사회 등의 문제 속에서 건강한 가정을 무너뜨리려는 역기능 집단이 있다. 근자에는 ‘건강가정 기본법’이라는 허울로 전통적 ‘가족’ 정의를 삭제하고 동성애 행위조차 비난할 수도 없는 법을 발의하고 있다. 건강한 가정을 오히려 해체시키는 역건강가정법을 발의하고 추진하는 정치가 패거리들이 있어 혼란스럽기만 하다.

  지구상 영원히 소멸될 종족이 있다. 그 종족이 소멸되기 전에 먼저 그 사회의 가정이 파괴되었다. 건강한 가정은 건강한 사회 건강한 국가의 기로다. 건강한 가정이 개인의 경쟁력이고 국가의 경쟁력이기도 하다. 가정의 달을 보내며 모든 가정이 건강한 가정이기를 바라며 건강한 가정을 해치는 동성애를 비롯한 어떤 악법도 집단도 우리는 배격한다.

두상달 장로

• 국내1호 부부 강사

• 사)가정문화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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