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이야기] 아프리카 선교에 관을 가지고 가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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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선교사 멜빌 콕스는 1833년 아직까지 아무도 가지 않는 아프리카 라이베리아에 선교 계획을 세우고 떠나게 되었다. 그 당시 라이베리아는 현지인들이 단지 백인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백인을 살해하는 위험한 지역이었다. 콕스 선교사가 선교를 떠나기 전에 어느 신학교 채플시간에 하나님께서 자기를 라이베리아로 선교를 떠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하며 자신의 라이베리아 선교에 대한 계획을 설명했다. 

이 설명을 들은 어느 신학생이 아프리카 라이베리아 선교는 사명보다 무모한 일이라고 하면서 라이베리아로 가실 때 선교사님께서 “관을 가지고 가시오”라고 했다. 라이베리아에 가면 죽을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때 콕스 선교사는 내가 라이베리아에서 선교를 하다가 죽어서 돌아오지 못해도 주님의 명령을 지키겠다고 결코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콕스 선교사는 결심한 대로 라이베리아에 가서 선교를 하다가 5개월 만에 현지인에게 살해당해 순교를 했다. 그러나 그 후 콕스 선교의 뒤를 이어 많은 선교사들이 라이베리아에 가서 선교를 해 점점 선교의 문이 열려 지금은 인구의 10%가 예수를 믿는 복음의 열매를 맺은 나라가 되었다. 한 생명의 희생으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 전국적으로 복음이 퍼지는 역사가 일어난 것은 하나님께서 하셨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아프리카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선교를 하다가 8개월 만에 25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 순교한 선교사의 이야기는 깊은 울림을 준다. 

그가 급성맹장으로 쓰러져 수술을 받았으나 회복되지 못하고 한국에서 순교를 한 셈이다. 서울 마포 양화진의 이름을 절두산이라고 부른다. 김대건(1822-1846) 신부는 1846년 한국인으로 처음 신부가 되었으며 1846년 7월 26일 서울 마포 새남터에서 김대건 신부와 신도 11명의 목을 잘라 순교를 당했다. 김대건 신부의 동상이 서울 마포 새남터에 건립되었으며 정부가 신도들의 목을 잘라 한강에 던졌기 때문에 새남터를 ‘절두산’이라고 했다. 선교는 현지 사정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선교사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할 때 하나님에 의해 그 결과가 이루어지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김광식 목사<인천제삼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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