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2일 한국기독교연합회관에서 제64회 한국기독교학술원(이사장 이승택 장로, 원장 손인웅 목사) 공개 세미나가 ‘한국교회의 몽골 선교와 국제울란바타르대학교 30년’ 주제로 개최됐다. 이날 강연한 장로회신학대학교 명예교수 임희국 박사의 ‘한국 개신교의 몽골 선교 – 국제울란바타르대학교 30년’ 원고를 허락받아 게재한다. 임희국 박사는 스위스 바젤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교회사학회 회장, 본 교단 총회 역사위원회 전문위원, 장로회신학대학교 역사신학 교수 등을 역임했다.
/편집자 주
▮ 교육 선교
1) 울란바타르대학(Ulaanbaatar College) – 외국인 교육 투자 단독법인 설립(1995년)
1995년에 몽골 정부는 외국인의 교육 투자 곧 외국인의 학교 설립을 허용하기로 했다. 시장경제 정책의 범주로 추진하려는 몽골 정부의 교육 개혁·개방이 윤순재 선교사가 운영하는 한국어학교에게 획기적인 기회를 부여했다. 정부의 교육부가 그에게 외국인 투자 교육기관으로서 한국 투자법인(100%) 유한회사로서 울란바타르대학(Ulaanbaatar College, 이하 본교)을 승인했다. 이제까지 한국어를 가르쳐 온 한국어학교(Institute)가 단과 대학(College)으로 승급하는 승인을 받았다. 본교의 설립일은 1995년 4월 24일이며, 강의실은 국립의과대학강의실을 임대했고, 학교 대표는 학장 윤순재였다. 본교는 학사(BA) 학위를 수여하는 4년제 대학이었다.
이는 몽골 정부 교육부의 대학교육국장 터무르오치르가 윤순재 선교사에게 한국어학교를 대학으로 등록해 보라고 권면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학교가 장차 몽골과 한국의 민간 교류 공간이 될 가능성을 내다본 권면이었다. 교육부 장관 얼찌호특이 울란바타르대학 설립에 최종 재가하면서 “몽골 역사상 최초로 외국인에게 사립대학 설립을 허가하는 것이므로 몽골 문화와 몽골인의 정서에 부합하면서도 국제적 기준으로 교육해 몽골 안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역할을 하도록” 당부했다.
몽골 정부의 교육 정책은 교육의 개방화, 세계화, 그리고 국제적 기준에 맞추는 목표를 설정했고, 본교는 이 교육 정책에 부합되는 교육을 위해 매진하며, 좋은 교육환경과 질 높은 교육시설 마련에 힘쓰면서 내부 조직과 운영의 체계도 갖추어 나갔다. 이와 함께 수준 높은 강의를 위해 엄격한 학사 행정(학점 제도, 강의 평가 등)을 제정했고, 대외적으로 폭넓은 관계를 도모하고 발전기금 모금에 힘썼다. 본교는 3개 학과(한국어과, 경영학과, 컴퓨터학과)를 갖춘 단과대학이 되어 몽골 우수 5대 사립대학으로 인정받았고 또 한국학연구를 위한 중심 기관으로 자리를 잡아 갔다. 본교 졸업생들은 한·몽 합작회사에 취직하고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고 국내(몽골) 공공기관에서 공직자로 일하고 국내 교회에서 지도자(목회자, 통역, 찬양대, 교사 등)로 일했다.
2) 본교 후원이사회 조직(1998년), 조직과 경영체계 구축
1998년 9월에 개정된 몽골 교육법에 따라 국내 모든 대학이 ‘운영위원회’를 조직해야 했다. 본교는 이에 운영위원회 겸 후원이사회를 구성했다. 이사회의 임무는 재정 후원이 주된 업무였는데 이사장에 김동엽 목사(서울 목민교회)가 취임했고 또 사무국장에 조건회 목사(서울 연예인교회)가 취임했다. 본교의 대학 조직은 학장 윤순재, 부학장 체벤푸릅이, 대학 3개 학과(한국학과·경영학과·컴퓨터학과)와 교양학부, 5개 학사 부처(기획실·교무처·총무처·학생처·대외협력처), 6개 부속 기관(도서관·전산실·인쇄실·시청각실·연구소·방송국) 등으로 구성되었다.
기독교 세계관으로 설립된 본교는 몽골 명문 기독 사립대학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전교생 30%, 교수와 직원 40%가 기독교인이었으며, 기독 학생 동아리가 2개였다. 본교에서 활동하는 외부 선교 단체로는 UBF, IVF 등이 있었다. 본교는 복음을 전파하는 기독교 지도자를 가르쳐 양육하는 사명을 의식했다. 이 사명을 위한 본교의 설립이념은 ‘국제적인 대학 수준의 교육을 지향하며, 몽골의 경제와 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개인의 인권을 존중하며, 전인적인 능력을 지난 성실한 지성인이 되는 믿음(Faith), 소망(Hope), 사랑(Love)의 인재 양성’이었다.
이즈음부터 본교는 한국의 대학들과 자매결연이나 학점 교류 등으로 대외 관계를 맺으며 지경을 넓혀갔다: 순천향대학교(총장 이천수, 1997년), 경인여자대학(총장 김길자, 1998년), 광운대학교(총장 박영식, 1998년), 아시아연합신학대학(총장 임택권, 1998년), 숭실대학교(총장 어윤배, 1999년), 장로회신학대학교(총장 서정운, 2000년), 항공대학교(총장 홍순길, 2000년) 등.
1999년 5월에 실시한 몽골 내 대학 종합평가에서 본교가 ‘우수대학’으로 선정되었다. 대학원을 개설하고 출판부 운영, 사회교육원 강좌 개설 등을 실시했다. 본교의 입시 경쟁률은 평균 5대 1이었다. 학생들이 납부하는 등록금은 국립종합대학 수준이고 이것이 본교 경상비의 50~60%를 충당했다. 이제는 본교가 몽골 최고의 사립대학으로 우뚝 섰다.
3) 대학(College)에서 종합대학교(University)로 승격, 재단법인 설립
1999년 11월에 학장 윤순재에게 한국에서 반갑고도 귀한 지인 두 사람이 몽골로 찾아왔다. 이들은 선교 단체 세계선교회(세선회)의 김철우와 이흥순이었다. 윤순재는 두 분을 모시고 대학의 이곳저곳을 안내했고 또 학교의 발전 전망에 관해 설명했다. 이 만남이 계기가 되어서, 이흥순이 수년 뒤 2002년 울란바트르대학교 재단법인 이사장이 되었고, 그는 그 이후로 학교 발전에 헌신적으로 이바지했다.
2000년 6월 이후 새 정부가 들어서며 몽골의 정치·경제·외교·사회 등 각 분야의 정책이 광범위하게 변경되었다. 새 정부는 지난 정부가 외국인에게 차고 넘치는 관대한 정책을 펼쳤다고 비판했고, 또 외래 종교(기독교 등)가 몽골의 전통과 기강을 흩트렸다고 비판했다. 법 개정은 몽골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삶을 제한시켰고 또 활동도 위축시켰다. 본교로서는 교수로 재직하는 한국인 선교사들의 입국 허가와 비자 연장이 아주 힘든 일이 되었다.
몽골의 교육법도 대폭으로 바뀌었다. 정부가 전국 대학에게 2002년부터 법인설립의 예비단계로서 복수의 이사회를 조직하라고 지시했다. 윤순재 학장은 귀국해 장로회신학대학교 서정운 총장에게 이사직을 제안했고, 10월 27일 종로 여전도회전국연합회관에서 본교 재단법인 설립 발기모임을 가졌다. 이를 위해 사전에 이흥순, 윤순재, 서정운이 함께 숙의했다.
본교는 2개의 구성원이 하나로 합쳐지는 재단법인 이사회를 구상했다. 운영과 재정을 위한 이사회를 하나의 재단법인으로 조직하는 안이었다. 대학 운영 이사진은 목회자들로 구성하기로 했는데, 이를 통해 본교의 기독 설립이념과 정체성을 견지하고 이를 통해 본교 특성화를 창출 및 견지해야 한다고 보았다. 운영 이사진은 지금까지 본교를 지원해 온 한국 목회자들의 후원이사회 및 운영위원(위원장 김동엽 목사)의 승계였다. 대학 재정 이사진은 평신도(장로 등)로 구성하기로 했는데, 복음 전파와 선교에 뜻을 둔 한국 평신도들이 참여하는 것으로 정했다. 이렇게 운영 이사회와 재정 이사회가 하나로 합쳐져 본교 법인이사회를 조직했다.
본교는 이제 단과대학(College)에서 종합대학교(University)로 승격했다. 이와 함께, 본교의 발전에 걸맞은 건축 계획이 빠른 속도로 진전되었다. 몽골 정부가 학교 건축에 필요한 대지를 제공했고, 건축을 위한 모금이 시작되었다. 건물 건축을 위해 안조현이 한국에서 몽골을 여러 차례 방문했고, 그 결과 2002년 1월 건축 시공을 맡은 바트자르갈과 함께 건축회사 아스콘스트럭션사를 설립했다. 이 회사가 건축 자재를 구매해 나갔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돌발 변수가 발생했다. 한국의 선교 단체들이 울란바타르에서 또 다른 대학을 설립하려고 준비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맨 처음에는 한국 선교 단체 인터콥이 이 일을 착수한다는 소식이었고, 그다음에는 원동연을 중심으로 여럿이 이 일을 추진한다는 소식이었다. 그들이 대학 이름도 작명했는데 그 이름이 ‘몽골국제대학’이었다. 그들의 추진작업이 한국에서 본교 건축에 후원하려는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들어 본교의 건축을 후원하려는 한국인들에게 본교를 몽골국제대학으로 착각하도록 했다. 이 상황을 본교가 적극 대처해야 했다.
2002년 2월 28일 울란바타르대학교 재단법인이 설립되었다. 이사진은 이사장 이흥순과 부이사장 김동엽, 이사 김철우·서정운·안교성·안조현·유성우·윤순재·정재수·조건회·조남선, 감사 바트자르칼·안수화였다. 이사회가 법인 창립총회로 모였다.
또 이날 이사회와 본교는 대학 건축 기공식을 개최했다. 도서관 및 소강당, 강의동, 체육관 건축에 첫 삽을 떴다. 계속해서 학생회관과 행정관의 신축을 착공했다.
3월에 몽골 정부가 공식적으로 최우수 명문 대학 10개를 발표했는데, 본교가 선정되었다. 국립대학 7개와 사립대학 3개가 선정되었는데, 본교가 몽골 사립대학 가운데 최우수 대학이었다. 당시 몽골에서는 국공립대학이 40여 개, 사립대학이 140여 개였다. 국공립대학 대다수는 재학생이 1천 명 이상이었고 또 대학의 역사와 전통이 깊었다. 이에 비해 사립대학은 설립된 지가 이제 겨우 10여 년 남짓이었고 그 규모도 크지 않았다.
본교 새 캠퍼스 공사는 울란바타르 시내 상업 물류의 유통 중심지에 있는 대지 6천 평에 건물 6개 동을 신축했다. 강의동, 행정관, 학생회관, 도서관 및 소강당, 체육관 및 학생회관 등을 신축했다.
그 이후로, 본교 재단이사장 이흥순을 중심으로 한국기독교학술원 이사진이 학교 발전을 위해 매진했다. 이에 힘입어 본교는 교육환경과 시설, 교수진과 학술연구, 교과과정, 그리고 학생 서비스 등이 크게 향상되면서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다. 2009년의 경우 본교 이사진은 미화 2천만 불을 학교에 지원하기도 했다.
▮ 몽골 청년 세대 선교 현장으로서 울란바타르대학
본교는 기독 사립대학으로서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의 사명을 의식하고 있다. 2002년 몽골의 복음화율은 전체 인구의 약 0.6%인데, 울란바타르대학에서는 전교생 550명 가운데 25-30%가 기독 신앙인이었다. 이 통계 수치는 본교가 몽골 청년 세대와 젊은 지성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기관임을 증언해 주고 있다. 본교는 이 신앙인 학생들을 교회와 연결되게 하고, 또 본교는 이들을 성숙한 신앙인으로 양육하려 한다.
본교는 몽골선교와 몽골 교회의 발전에 다음과 같이 힘써왔다.
① 몽골 교회 지도자 다수가 본교 재학생이거나 졸업생이다.
② 몽골에서 간행되는 교회 교육 교재와 자료, 찬송, 묵상 자료 등이 본교의 재학생과 졸업생의 손에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이는 본교 한국어학과의 특성이다.
③ 본교를 통해 한국 파송 선교사들이 몽골 입국비자를 받아 이 나라에 와서 안정적으로 사역할 수 있다. 본교는 이들의 선교 활동을 지원하고 이들의 신원을 보호하는 역할을 해왔다. 예를 들어, 본교와 선교사들이 연합해 지역 사회 개발사업이나 구호사업을 개발하고 증진해왔고, 그리고 이 사업의 다수가 교회 개척으로 이어졌다.
④ 본교는 몽골에 온 선교사들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데, 몽골 법령 제공, 몽골 정치·사회·경제·문화·지리 등 다방면의 자료와 통계 등을 제공해 왔다. 또 본교는 선교사들의 상호 소통과 교류에 구심 역할을 하고 있다. 본교는 이들에게 몽골 언어 사전을 제공하고 또 이들의 몽골 언어 습득과 훈련을 지원했다.
⑤ 본교는 교회에서 당장 필요한 학생(교역 보조) 도우미 사역자들을 파송할 수 있다(통역, 컴퓨터, 교회 행정 등)
⑥ 본교는 한국 교회가 파송하는 몽골 단기 선교팀을 초청하는 법적 지위를 갖고 있다.
▮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관점에서 본 몽골선교와 국제울란바타르대학교 설립
몽골선교와 울란바타르대학의 설립을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하나님의 선교는 선교의 주체가 (선교사 자신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임을 전제한다. 선교사는 선교를 위해 하나님이 부르신 일꾼이라는 뜻이다. 선교사는 선교 현장에서 복음의 씨를 뿌리고 물과 거름을 주는 수고를 하고 그런데 그 씨앗이 싹트고 자라게 하는 이는 오직 하나님이시다(고전 3:5-7). 선교사는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교에 동역하는 ‘사역자’이다. 선교사가 선교 현장에 오기 전에 하나님은 이미 그 현장에서 일하셨는데, 선교사가 이곳에 온 이후로도 하나님이 그를 통해 일하신다. 선교사는 선교 현장에서 언제나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고백하는 가운데 사역한다.
하나님의 선교는 토착 원주민(현지인)의 전통과 문화를 ‘존중’하면서 시작된다. 이에, 선교사는 선교 현장으로 파송되기 전에 그곳의 언어, 역사, 문화, 지리, 정치, 경제, 사회 등을 배우고 몸으로 익혀야 할 것이다. 선교사는 토착인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해야 하며,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신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어 그 나라의 증인으로 삶을 살게 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선교사 역시 선교 현장에서 기독교를 가르치는 교수와 선생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증인된 선교사와 토착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친구로 지내며 신뢰와 우정을 쌓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선교를 몽골선교와 울란바타르대학 설립에 적용해 보면, 특별히 성경 번역과 교육 선교에서 좋은 열매가 맺혔다고 볼 수 있다. 성경 번역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몽골 언어, 몽골 젊은 세대의 마음에, 그리고 전통문화와 현대 문화 속으로 (마치 누룩처럼) 깊숙이 스며 들어가게 했다고 본다. 또한, 울란바타르대학교에서 젊은 학생들의 마음에 뿌려진 복음의 씨앗이 싹트고 자라서 ‘몽골인의, 몽골을 위한, 몽골 기독교’가 생성되어 형성되고 있으리라 기대한다.
계속해서, 몽골에서 이어지는 하나님의 선교가 육신이 되신 하나님 말씀(요 1:14)의 ‘성육신 선교’로 꽃피고 열매 맺히기를 기대한다.
(끝)
임희국 박사(장로회신학대학교 명예교수, 교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