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고난 속에 빛난 신앙, 오늘 우리가 이어야 할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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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는 그 태동부터 순교의 역사로 점철되어 왔다. 복음이 조선 땅에 전해졌을 때, 그것은 단순한 종교의 변화가 아닌 생명의 전환이었다. 19세기 말, 가난하고 무지했던 민중 가운데 복음은 놀라운 해방의 메시지로 들려졌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목숨을 건 선택이었다. 신앙을 고백하는 순간 가족과의 단절, 사회적 배척, 때로는 죽음까지도 감내해야 했다. 순교자들의 고귀한 희생, 순직자들의 헌신은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니기에 오늘의 교회를 지탱하는 기초이며 우리가 걸어가야 할 믿음의 길을 비추는 등불이다.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신앙의 정절을 지킨 선배들, 공산치하에서 예배를 포기하지 않고 끝내 순교의 길을 걸었던 무명의 성도들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 교회가 존재하는 것이다. 신앙의 전통과 역사를 진지하게 이어온 공동체이다. 교회가 시대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세상 속에서 복음의 빛을 비추려 했던 이유는 바로 순교자들이 보여준 ‘복음에 대한 절대적 헌신’이 그 뿌리에 있기 때문이다.

순교자들의 헌신은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거룩한 영적 거울이다. 오늘날의 교회는 신앙의 자유를 누리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핍박받지 않아도 예배할 수 있고 생명을 걸지 않아도 신앙을 지킬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자유는 때로 신앙을 가볍게 만들고 헌신을 미루게 하며 복음을 삶의 중심이 아니라 부속물처럼 취급하게 만들었다. 예배의 감격이 사라지고 공동체성은 약화되며 교회는 소비자 중심의 공간으로 변질되는 위기를 겪고 있다.

순교란 단지 칼과 불의 시대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오늘의 순교는 다른 모습으로 우리 앞에 놓여 있다. 편안함을 내려놓고 복음을 선택하는 결단, 손해를 감수하고 진리를 붙드는 삶, 세상의 기준보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려는 실천,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순교적 신앙이다. 반드시 죽음이 아니어도 된다. 매일매일 복음을 위해 자기를 부인하고, 이웃을 섬기며, 공동체를 위해 땀 흘리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순교자들의 믿음을 단지 기억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 믿음을 계승하고 삶 속에서 실천하며 다음세대에 온전히 전수해야 한다. 믿음의 유산은 박물관에 보관되는 전시품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며 다음 세대를 살리는 능력이다. 순교자의 이야기를 아이들과 청소년에게 꾸준히 들려주어야 한다. 신앙이 단지 부모의 문화가 아니라 나의 선택이고 나의 고백이 되어야 한다. 그들이 자라서도 ‘믿음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이라는 확신을 품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 시대의 교회는 순교자들의 영성을 본받아 하나님 나라의 정의와 평화를 위한 공적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고통받는 이웃을 외면하지 않고 탄식하는 피조물의 소리를 듣고 응답해야 한다. 교회가 편안한 곳에만 머물지 않고 예언자적 사명을 따라 시대의 어둠을 밝혀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순교자들의 삶을 따르는 참된 계승이다. 

다시금 복음 앞에 서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신앙의 자유를 가볍게 여기지 말고 생명을 걸고 지켜낸 복음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야 한다. 죽도록 충성해 생명의 면류관을 얻겠다는 믿음의 각오로, 교회의 본질을 붙들고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에 응답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한다. 믿음의 유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이야기는 지금 우리의 손에서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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