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광장] 화개정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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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수도권에 새 명소가 하나 더해졌다. 이름하여 화개정원. 서울에서 찾아가자면 김포반도에서 북행해 강화도를 종단하고 다시 거대한 사장교를 하나 건너 교동도에 이르고 국토의 서북쪽 끝 섬의 정수리인 화개산에서 이 아름다운 산중정원을 만난다. 완만한 등반로가 구비구비 돌아 해발 260미터 정상에 다다르고 거기에 마치 거대한 함선의 마스트 같은 형태의 전망대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다. 투명한 바닥을 통해서도 바다가 보인다. 경사면을 도보로 오르기 힘든 방문객을 위해 모노레일 동차가 천천히 사람을 위아래로 실어 나르는데 이 시설을 이용하면 산의 남쪽 사면을 뒤덮고 있는 기화요초와 관상수목들을 스쳐 지나가야 하는 불리를 감수해야 한다.  

경기도 서북부에만도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 김포반도 북단의 애기봉, 그리고 강화도 동북단의 평화전망대 등 갈 수 없는 북쪽 땅을 조망하는 ‘안보관광’ 시설들이 이미 자리잡고 있지만 화개정원의 새 망대로부터는 코앞에 놓인 북한 땅 뿐만이 아니라 서해바다의 강화도, 석모도, 불음도 밖으로 점점이 떠있는 유인도, 무인도들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특권을 누린다. 대기가 맑은 날이면 임진강, 한강, 예성강이 합류하는 조강(祖江)의 푸른 물 너머로 북한 개풍군의 산야와 그 뒤로 아득히 솟은 개성 송악산의 검은 봉우리를 관망할 수 있고 서쪽으로는 먼 바다 위로 보이지 않는 금단의 선 NLL 북방한계선을 향해 한스러운 시선을 던지게 된다. 

화개정원 중턱에 자그마한 초가집이 한 채 서있고 거기에는 ‘연산군 유배지’라는 표지가 있어 산비탈을 오르는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1506년 중종반정으로 폐위된 연산군이 나인과 내시 몇 사람만 따르는 가운데 강화섬을 거쳐 다시 배를 타고 이 교동도 화개산에 유폐되었는데 이번에 화개정원을 꾸미면서 자세한 고증을 통해 이 집을 지었다고 한다. 초가 본채는 돌보는 사람들이 쓰던 집이고 그 옆으로 탱자울타리를 두른 단칸 초막이 붙어있는데 이것이 바로 연산군 위리안치(圍籬安置) 장소라는 설명이 씌어 있다. 언뜻 안채의 뒷간으로나 보이는 이곳에서 연산군은 두 달 동안 갇혀 있다가 홧병을 이기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중종반정은 왕의 난행과 거듭되는 사화 즉 고위급 일제 숙청을 견디다 못한 훈구파, 사림파의 신하들이 연대해 모의하고 결행한 사건으로 중종조에 들어서도 관료층의 훈구세력과 유학자 중심의 사림파의 대립은 계속되었고 사색(四色)당쟁은 조선왕조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그리하여 500년 전 이 땅에 심어진 당파간 권력투쟁의 씨앗이 민족의 DNA에 스며들어 오늘날의 민주공화정에서도 연면히 이어지고 있는 것을 우리는 탄식한다. 

대한민국 국민은 불쌍하게도 두 사람의 전직 대통령이 연이어 중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르고 또 한 사람이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퇴출되어 형사재판을 받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3년만에 또 한 차례 소란스런 선거운동을 겪고 새 대통령을 뽑는 투표장을 다녀왔다. 이날을 사는 사람들이 교동도 화개정원의 연산군 위리안치 장소를 찾으면 새삼스레 가슴을 때리는 역사의 사이렌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권력의 종말, 그 최악의 모습과 함께. 그러고보니 우리는 ‘제왕적 대통령 체제를 바꿔야 한다’는 정치판의 소리를 선거기간 중에 많이 듣기도 했다. 

김명식 장로

• 소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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