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라 교회의 절기는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 문제는 그 교회력에 나타난 절기들이 우리 신앙의 역사에 어떤 의미, 도전, 역사성, 영향력을 주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부활절 이후 50일이 되면 오순절이며, 그때의 상황을 사도행전 2장의 성령강림사건이 잘 나타내주고 있으며, 우리는 이를 ‘성령강림절’이라고 부른다. 그 이후 많은 성도들이 성령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이루어왔다. 과연 오늘 한국교회는 ‘성령강림절’을 맞으면서 어떤 역사를 기대하고 있는가? 교회마다 성령강림절을 앞두고 여러 가지 행사를 갖는데 우리는 어떤 성령의 역사를 기대하는가?
우리가 잘 아는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는 목사의 가정에서 열아홉 명의 형제자매 중 열다섯 번째였는데, 그가 여섯 살 때, 밤중에 집에 불이 났다. 식구들이 다 피난한 줄 알았는데 웨슬리가 남아있음을 알고 사람들은 인간 사다리를 만들어 웨슬리를 구조했으며, 그때 그의 어머니는 “하나님께서 장차 이 아이를 영혼의 불쏘시개로 사용하려고 구해주신 것이다.”라고 고백했다. 그 후 웨슬리는 자신을 “하나님의 일을 위해 타는 불에서 꺼낸 부지깽이”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평생을 살았다고 한다. 이런 웨슬리가 목사가 되고, 선교사의 일을 했으나, 1738년 5월 24일 오후 8시 45분경 런던 올더스게이트 거리에 있었던 모라비안 성도들의 집회에서 인도자가 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문에서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변화를 일으키시는 일을 설교하고 있을 때, 나는 내 마음이 뜨거워짐을 느꼈다.”라고 고백했다. 이것이 웨슬리의 회심이며, 여섯 살 때 화마에서 건짐을 받은 “부지깽이” 웨슬리가 서른다섯 살 성령과 말씀의 뜨거운 불길에 사로잡힌 하나님의 도구가 되었다. 그 후 그는 당시의 형편으로 도보나 말을 타는 것으로 25만 마일(약 40만km)을 설교와 선교사역을 감당했다.
그는 88세까지 살았는데 그의 성령의 감동으로 불타오른 역사가 왜 이리 그립고 부러운 것일까? 오늘 우리 교단에 이런 불길을 가진 한 사람의 웨슬리, 칼빈, 길선주, 김익두는 있을 수 없는가? 웨슬리 시대의 교회와 사회의 환경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니었다. 신앙의 반대, 박해, 심지어 교회로부터 쫓겨남이 있어도 “세계는 나의 교구이다.”라는 결기로, 성령의 감동으로 일했던 한 사람이 그립다. 정치적이니, 이념적이니, 세습이니… 하는 인간 타령이 아닌 “성령의 검, 곧 말씀의 감동을 일으키는 그 한 사람! 아무리 어둡고 혼탁해도 말씀의 등불을 들고 있는 한 사람!” 그 한 사람이 있기를 기도하자. 금년 ‘성령강림절’에는 이렇게 성령에 감동되어 하나님의 부지깽이로라도 쓰임 받는 사람이 있도록 기도하고, 기도하자!
/정영택 목사(증경총회장)
[특별기고] 어김없이 ‘성령강림절’은 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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