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옛말에 ‘딸 나무, 아들 나무’라는 말이 있습니다. 딸 나무는 오동나무이고 아들 나무는 잣나무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동나무는 대나무 다음으로 빨리 자라는 나무입니다. 1년에 10미터씩 자라 10년이 되면 재목으로 쓸 수 있는데 나무의 특이한 성분 때문에 가구나 악기 재료로 안성맞춤입니다. 잣나무는 60~70년을 바라보고 심었습니다. 강한 자립심과 책임감을 상징하고 나중에 관을 만들 때 사용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사람과 나무를 빗대어 말하곤 하는데 이는 좋은 나무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길 바라며 ‘거목’, ‘재목’ 이라 불렀습니다.
흥미롭게도 나무 이야기는 성경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사기 9장에 비유가 담긴 나무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안에 감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가 등장하는데 다른 나무들이 이들에게 왕이 되어 달라 요청합니다. 실제로 세 나무는 각각 중요한 역할과 가치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감람나무는 기름을 짜서 제사와 요리, 해독제로 사용했습니다. 무화과나무는 당도가 매우 높고 영양가가 풍성한 과일입니다. 포도나무는 포도주를 하나님께 제사 드릴 때 사용되며 진통제로 쓰였습니다. 이처럼 유익하고 사랑받는 세 나무는 자신들의 사명과 역할에 충실하고자 왕이 되는 것을 거절합니다. 반면, 어떤 용도로도 쓸모가 없는 가시나무가 등장합니다. 일반적으로 가시나무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지만, 성경에서는 때론 다른 의미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때 본 떨기나무가 작은 가시나무(스바크)인데 신의 상징입니다. 고대 근동에서 신의 임재나 계시는 낮고 하찮은 것을 통해 나타난다고 여겼습니다. 마치 예수님의 성육신을 떠올립니다. 또 가시나무는 고통과 희생을 통한 구속을 상징하는데 예수님의 가시면류관이 여기에 속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가시나무도 왕이 될 자격이 충분합니다. 하지만 사사기 9장에 나오는 가시나무는 고통과 희생을 감내하는 상징적인 의미보단 단지 권력과 포악한 통치자를 상징하는 권력 그 자체입니다. 이런 가시나무를 왕으로 상징할 땐 부정적인 모습으로 언급하며 풍자와 비판적인 맥락으로 부적합한 왕, 해로운 통치자로 비유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나무냐가 아니라, 자신이 받은 사명을 알고 어떻게 쓰임 받느냐입니다. 오동나무처럼 곧게 자라고, 잣나무처럼 깊은 책임감을 갖든, 혹은 가시나무처럼 낮고 하찮게 여겨지는 존재라도, 주님의 손에 들려질 때 거룩한 도구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무처럼 스스로의 본분을 깨닫고, 겸손히 주께 쓰임 받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김한호 목사
<춘천동부교회 위임목사•서울장신대 디아코니아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