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도의 문학산책] 영원한 보헤미안 조병화 시인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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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을 종교적 신앙으로 승화시켜

나귀의 눈물

영하 십육도 얼마라는 매서운 아침/냉수로 세수를 하면서, 문득/어머님의 생각/어머님은 찬 겨울을 줄곧/이 냉수로 세술하셨던 것이 아닌가

어머님이 혼자 되셔서/우리들이 서울 살림을 처음 시작했을 때/우리들은 참으로/매서운 이 겨울처럼/가난했었다

그걸 견디어 냈던 것은/오로지 어머님의 하얀 모습, 아침마다/냉수로 세술 하시던 맑은 모습/냉랭한 그 모습이 아니었던가/일제 36년, 조선인처럼/우리 가족도 그렇게 가난했지만/어머님은 매서운 그 가난을, 이른 아침마다/매서운 냉수로 세술 하시듯이/맑게, 맑게 우리를 우리를 끌어 올리신 거다

실로 가난은 매서운 거/처량한 거

어머님, 그곳은 지금 따스하시옵니까/지금 이곳은 영하 십육도 얼마라 합니다.

1985년. 1. 30.

1963년 6월 3일은 편운 선생님의 모친 김준 여사가 지상에서의 삶을 하직한 날이다. 20여 년이 지나서 쓴 추모시 중의 한 편이다. 모친께서는 81세를 일기로 영면(永眠)하셨고, 당시 편운 시인은 41세였다. 

의자

지금 어디메쯤/아침을 몰고 오는 분이 계시옵니다/그분을 위하여/묵은 이 의자를 비워드리지요//지금 어디메쯤/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그분을 위하여/묵은 이 의자를 비워드리겠어요//먼 옛날 어느 분이/내게 물려주듯이//지금 어디메쯤/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그분을 위하여/묵은 이 의자를 비워드리겠습니다.

편운 선생님이 저의 회갑을 축하하는 축시를 육필로 써 주셨다.

착한 朴利道 시인

– 回甲을 축하하며

착한 어린이처럼 살아오면서/깊은 인생을 안으로 안으로 시를 써 온/박이도 교수가 세월 어쩔 수 없이/회갑 년을 맞이하다니/덧없는 세월의 섭리를 어찌하리//그러나 덧없는 세월의 섭리를/순리대로 착하게 겸손하게 어질게 곱게 깊이/사랑으로 믿음으로 진리를 곧게 살아 온 삶/어찌 박이도 교수의 세월이 덧없다 하리//영국의 시인 Stephen Spender는/“사람은 누구나 태양에서 나와 태양으로 돌아가는/짧막한 여정을 사는데 불과 한 거/그러나 정직하게 자기를 산 사람은/자기 흔적을 하나 남기고 간다”라고 했지만//여기 박이도 시인은 실로 많은 자기 흔적을/창작 문학으로, 대학 교육으로, 봉사로 남긴 사람/어찌 찬양하며 축복하지 않으리//박이도 시인, 박이도교수, 오늘이 회갑의 자리/이 풍요로움, 이 아름다움, 이 사랑스러움/길이길이 빛나리니/앞으로 오래오래 그 영광을 사시오서.

 1997. 가을 *파이프

스승이신 어르신네께서 제자의 회갑을 축하해 친필로 쓰시고 그의 상징물 중의 하나인 파이프를 그려 넣은 것이다.

봉직하는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주관한 저의 회갑연에서, 재학생이 이 축시를 낭송했다. 

<바로잡습니다>

지난호 1918호 2025년 5월 17일자 문학산책 내용 중 ‘한완상(당시 연세대 부총장)’을 ‘한상완(당시 연세대 부총장)’으로 바로잡습니다.

박이도 장로

<현대교회•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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