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이야기] 새문안교회 첫 한국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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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재명(車載明, 1881-1947) 목사는 한국의 장로교 ‘어머니 교회’라고 불리는 서울 새문안교회 첫 한국인 목사다. 새문안교회 초대 언더우드 선교사(1887-1911)가 시무했으며, 제2대 쿤스 선교사(1916-1920)가 시무했으며, 제3대 차재명 목사(1920-1941)가 시무했다. 그런데 차 목사가 새문안교회에 부임하는데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그 이유는 그가 서북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평북 선천 신성중학교를 졸업한 30세의 조사로 언더우드 선교사의 발탁으로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이 30세에 공생애를 시작한 것처럼 30세에 교회 일을 시작했다. 1911년 새문안교회에 부임해 1년 후 장로가 되었으며 1913년 평양신학교에 입학해 1916년 제9회 졸업을 했다. 

그런데 그가 서북출신이라는 이유로 새문안교회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이것이 서울과 서북간의 지역적 갈등이었다. 그는 새문안교회를 사임하고 경기도 시흥, 김포 지역에서 교회를 시무하다가 1920년 새문안교회에 정식으로 부임해 목회를 했다. 이로서 한국교회가 선교사 시대에서 한국교회 목사 시대로 변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차 목사는 선교사 중심의 보수신학인 서북출신으로 새문안교회가 한국교회의 기초를 유지하는데 공로가 크다. 1919년 총회장에 선임되면서 차 목사는 미국, 영국, 중국, 4개국이 함께 회집한 한국교회가 중국 산동성 선교에 주역으로 참석했다. 

이는 한국교회가 중국을 복음화 하는데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이로서 차 목사가 서울새문안교회 한국인 첫 위임목사로 잘 감당했다. 그 후 차 목사가 조선예수교 연합공의회 초대 회장이 되었다. 이 기구는 선교사와 한국인 장로교, 감리교, 목사연합기구다. 

이 사건으로 경성노회에서 차 목사를 제명처분했다. 그 후 일제압박으로 마침내 차 목사가 새문안교회에서 떠났다. 

김광식 목사<인천제삼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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