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로서 받은 축복, 그리고 그 속의 평안
높아지려 하지 않을 때, 진짜 자유와 기쁨 찾아와
성과보다 소중한 건 사람들 기억 속 따뜻한 교제
내게 장로 직분은 늘 하나님의 기준을 한 번 더 생각하도록 했다. 그 잠깐의 여유를 가짐으로서 실족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이것이 ‘장로여서 받은 축복’이다.
장로이기 때문에 자유로울 수 있는 또 다른 측면은 장로는 자기를 내세우고 으스댈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평신도가 장로가 되었다는 것은 그 이상 높아질 것도 없고, 높아질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기를 증명하고 인정받으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그때부터는 최대한 겸손하게 최대한 낮은 자세로 교회 안의 모든 이들을 섬기면 된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점점 더 빠르게 변하고 경쟁이 심해지고 아무리 성공해도 다음 순간에 도태될 수 있는 곳이다. 그런 세상에서 각자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교회 안에서나마 낮아지는 태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크나큰 평안을 누리는 일이다.
장로라서 더 대접받고 모든 사람들의 섬김을 받으려 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다. 꼭 나서서 챙겨달라고 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알아서 챙겨주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는 진정한 교제가 이뤄질 수 없다.
상대를 높여준다고 해서 내가 상대적으로 낮아지는 게 아니다. 이미 장로이기 때문이다. 허리를 먼저 굽히는 것이 장로의 특권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하면 자유롭다. 교회 안에 있는 것이 행복하고 즐겁다.
교회 안에서도 행복하지 않고 마음이 불편하다면 키재기를 하고 있지 않은지 자기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내가 저 사람보다 더 좋은 학교를 나왔다, 더 좋은 학교에서 유학했다, 사회에서 더 높은 지위에 있다, 더 돈이 많다 등등 신경쓰기 시작하면 무얼 하든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내가 더 잘났으니 교회 안에서도 더 인정받고, 더 좋은 부서를 맡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어느 자리에서든 불만이 생기고, 무슨 봉사를 해도 즐거울 수가 없다.
너무 열등감을 가지고 위축될 필요도 없다. 소망교회 안에서는 대단한 사람들이 많다. 국내외 소망교회 시무장로 당회원 중에 박사, 교수는 물론 총장, 부총리도 있었다. 장관, 대기업 임원, 사장, 도지사, 국회의원도 있다. 하버드대학교 출신 시무장로도 두 분이나 된다. 한국사회 여러 분야의 중심에서 큰 역할을 하는 크리스천들이 소망교회에 총집결해 있는 셈이다. 이런 소망교회에서 초대 1기 장로가 됐기 때문에 처음부터 아예 키재기를 할 수가 없었다. 그 점이 나는 참 좋았다. 나만의 생각은 아닌 듯한 것이, 창립 45년이 되어 누적 등록교인 9만 명이 넘어가는데도 소망교회에는 지역갈등이나 정치적 편견에 따른 대립이 거의 없다.
내가 소망교회에서 여러 가지 중요하고도 어려운 책임을 맡아서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대단한 분들이 전문성을 갖고 열성적으로 참여해 도와줬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서는 키재기나 권위적 위계의식 같은 것들은 나타날 겨를도 없었다. 오로지 합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목적 하에 수평적 소통을 통하면서 순전한 신앙의 교제를 할 수 있었다.
얼마 전에는 양재천을 산책하는데 천변의 카페 창가에 앉아 있던 소망교회 권사님이 뛰어나와서 반갑게 인사를 했다. 차를 대접할 테니 들어오시라고 해서 따라 들어가 잠시 담소를 나눴다. 내가 성가대 부장, 고등부 부장을 할 때 이야기를 하며 “그때 참 재미있는 일이 많았다.”고 하셨다. 사실 나는 그분이 이야기하는 에피소드가 다 기억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분의 표정과 말투에서 행복한 감정이 전해져 왔고 나도 지나간 사건들이 회상되었다. 시무장로 시절 여러 부서에서 참 열심히 했던 기억이 스치자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됐다.
교회에서의 봉사라는 게 그렇게 재미있기만 한 것은 물론 아니다. 힘에 부치는 일도 있고 마음이 상할 때도 있다. 좋은 사람만 만날 수도 없다. 그러나 그 과정을 극복하면서 조금씩 양보하고 기다리면서 하다 보면 성과가 나는 것이고, 시간이 지나고 나면 좋은 추억이 남는 것이다. 남을 위해 일한 것 같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일을 한 것이었다고 깨닫게 된다.
내가 특별히 감사하게 여기는 것은 세월이 지난 뒤에만 보람을 느끼는 게 아니라 그 시간들 안에서도 순간순간마다 행복하고 즐거웠다는 점이다. 일을 잘 해서 성과를 내는 것보다, 인정받는 것보다, 일을 하면서 성도들 간에 교제하는 따듯함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장로로 시무한 보람이란, 함께 사역한 사람들의 가슴 속에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는 데 있다. 그것이 바로 성공적인 사역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장로로서 차고 넘치도록 축복을 받았다.
저도 자라서 장로가 될래요
아들딸이 어릴 때, 사업을 한창 키우던 시절에는 ‘두 녀석 중에 하나가 자라서 내 사업을 물려받아 주었으면…’ 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스스로 자기 진로를 선택했고 내 사업을 물려받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자기 삶을 스스로 개척하는 것도 좋은 일이었기에 존중해줬다. 나도 아내도 교회 일에 바빠 요즘 부모들처럼 챙기지 못했는데도 알아서 제 갈 길을 가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다.
늘 믿음직스러운 아들 성빈이는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의과대학 의공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소명을 가지고 성실하게 일해 왔다. 아들 둘에 딸 하나, 삼남매를 낳은 며느리는 요즘 아이 같지 않게 착하고 알뜰하다. 내가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 새로운 것을 배울 일이 있을 때면 그 핑계로 아들을 불러서 이것저것 물어보곤 하는데, 살갑기까지 하지는 않지만 늙어가는 아버지를 애틋해 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듬직하다.
박래창 장로
<소망교회 원로>